항목 ID | GC01800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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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縣城址 |
영어의미역 | Gohyeonseong Fortress Sit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 산69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희돈 |
성격 | 읍성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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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 후기 |
지정면적 | 26,950㎡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 산69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에 있는 고려 후기 울진현의 치소인 토축 읍성지.
[변천]
고현성에 관한 기록은 오래된 지리지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1631년 간행된 『울진군지(蔚珍郡誌)』의 울진읍 성곽 고현성조에서 ‘재현동현내동해곡토축위읍려공민왕이십년임자위왜구분선이읍우왕숙(在縣東縣內洞海曲土築爲邑麗恭愍王二十年壬子爲倭寇焚燹移邑于王淑)’으로 확인된다.
고려 신종 때 울진 김초(金草)의 변란 후에 산내성으로부터 현내동으로 읍성을 옮겨 토성을 구축하고 군치를 행해왔다. 1372년(공민왕 21)에 왜구에 의해 읍성이 소실되어 고읍성인 옥숙(玉淑)으로 읍성을 옮겼다. 이로 볼 때, 고현성은 1,200년대 전후에 토축으로 축성되어 1372년에 소실되기 전까지 약 170여 년간 읍치로서 활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울진읍에서 동쪽 해변을 향해 약 1.4㎞ 동진하면 동해에 인접하여 연지1리 현내에 다다르게 된다. 현내동은 바다에 접한 전형적인 어촌으로 50여 가구가 해변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가구는 새마을 창고 북쪽의 야트막한 비탈을 이용하여 모여 살고 있다. 마을 북쪽으로는 ‘짐승들’로 불리는 다소 평탄한 들판이 마련되어 있다. 그 위쪽으로 삼태기 모양의 능선이 바다로 입을 열고 있는 형상을 갖추고 있다. 이곳이 고현성의 옛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형태]
마을 주민에 의하면 선조가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할 때에는 5~6가구만이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마을의 북쪽에 있는 일암바위의 꼭대기에 일본군의 포병이 동해 바다를 향해 포를 설치한 초소가 있었다고 한다. 일암바위에서 북서쪽의 능선 척추부를 따라 올라가면 성벽의 상면 폭 380㎝, 성 안쪽 높이 300㎝, 성 밖쪽 높이 550㎝의 토루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일암바위에서 해발 42m 지점까지의 거리는 약 50m로서 이 구간의 토성 흔적은 능선의 척추부를 따라 지세대로 형성되어 있다.
성벽은 해발 42m 지점부터 서쪽으로 자연스럽게 반원을 그리며 해발 60m 정상을 향해 돌아가고 있다. 일부 구간에는 석축의 흔적도 관찰되어지나 대부분 토축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 토성벽 밖으로는 높이 140㎝, 폭 370㎝의 외부 회곽도가 1단으로 턱을 지어 마련되어 있다.
이곳 해발 60m 지점부터 능선은 다시 낮아지기 시작한다. 토성은 남쪽을 향해 내려오다가 울진읍 연지리 57-1번지 일대 논에 이르러 높이 4m의 정연한 토성벽의 흔적이 나타난다. 이곳은 원래의 토성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근년에 새로 건축한 교회의 서쪽 밭과 연이어져 있다.
[현황]
짐승들 일대를 개간하면서 성 안쪽을 다소 평탄하게 정리했으며, 원래의 토단[조사자의 견해로는 토성벽의 일부] 위에 지금의 모습처럼 정리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성벽의 자취는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성 안팎에서 고현성과 관련이 있는 특기할 만한 유물의 채집은 없었다.
고현성의 토성벽으로 추정되는 연장선은 교회 앞마당을 지나 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의 중심부를 따라 현내동 중앙으로 흘러내리고 있다고 판단된다. 일부 구간의 유실된 토성벽과 그 추정 연장선을 연결해보면 고현성의 총길이는 약 400m가 된다. 성 안의 면적은 26,950㎡이며, 성과 관련된 문지와 망루 등의 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지형으로 보아 현재 현내동을 관통하여 짐승들을 가로지르는 凹형의 중심부에 주 출입구를 두었던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