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4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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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箕城邑城 |
영어의미역 | Giseongeupseong Fortres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194-1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이희돈 |
성격 | 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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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고려시대[추정] |
길이 | 700m |
면적 | 52,000㎡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194-1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토축 읍성.
[건립경위]
기성읍성에 관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평해군 읍토성조에 ‘주회이백구십사보(周回二百九十四步)’라고 기록되어 있다. 평해의 구호(舊號)는 기성(箕城)으로 1357년(공민왕 6)에 기성현이 평해군으로 편입되면서 군소재지를 현재의 평해읍으로 옮겨왔다. 토축 읍성은 기성현 시절 군의 치소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동해 바닷가를 달리는 국도 7호선을 따라 영덕에서 울진을 향해 가다보면 기성면 척산리에 이른다. 서쪽에서 동해로 흐르는 정명천(正明川)을 가로지르는 기성교(箕城橋)를 지나면 곧바로 나타나는 첫 동네가 척산리 척산마을이다. 기성읍성은 척산마을에 위치하며, 동해 바닷가에서 서쪽으로 800m 떨어진 거리에 있는 해안 읍성이다.
기성읍성은 척산마을을 서쪽·북쪽·동쪽에서 마치 양팔로 감싸 안은 듯한 형상의 지형으로 남쪽이 터진 삼태기형을 이루고 있다. 성 안에는 현재 6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동쪽으로는 기성들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서쪽으로는 정명천이 흐르고 있다. 북쪽은 또 하나의 돌출된 능선과 연이어져 있으며, 북동쪽에는 기성초등학교가 있다. 남쪽의 평해읍성과는 7.5㎞ 떨어져 있다.
[형태]
기성읍성의 현존 길이는 약 700m이며, 성 안의 면적은 52,000㎡이다. 토성의 서쪽 능선에는 높이 2m 전후의 토루가 있다. 성 안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며, 토성벽의 상부 폭은 3m 전후이다. 성 밖으로는 경작에 의해 형태가 다소 유실되었으나, 1단의 턱을 만들고 정명천의 절벽과 맞닿아 있어 외부에서의 접근이 용이하지 못하다.
토성의 서북쪽 성벽은 상부 폭이 14m에 이르며, 성 안팎으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토성 상부가 14m에 이르는 것은 오랜 세월 삭토(削土)가 많이 진행되었음을 뜻한다. 기성초등학교 옆의 토성 상부 폭은 7m이고, 역시 성 안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성 밖으로는 폭 3m의 외부 회곽도를 만들어 놓았고, 다시 급경사의 절벽인 성 밖으로 연결되어 있다.
토성의 동쪽 해발 42m 지점은 본 토성 내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성의 곡각부에 해당되며, 상부는 매우 평탄하여 16×13m의 장방형 대지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성 안팎을 조망하기에 매우 편리해서 이곳은 망루 등의 건물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이곳을 정점으로 토성벽은 동남쪽의 지세를 따라 내려오고 있는 형국이다. 능선의 척추부를 따라 토성벽이 축조되어 있으며, 상부의 폭은 2m 내외이고, 성 안은 다소 완만하며, 성 밖의 기성초등학교 쪽으로는 경사가 급한 편이다.
기성읍성의 토성벽 주변에서는 간돌도끼 1점이 발견되었다. 간돌도끼는 검은 화강암 재질에 운모편이 조밀하게 박혀 있어 매우 반들거린다. 인부의 형태는 조개날 돌도끼[蛤刃石斧]의 형태인 양날형이며, 몸통의 단면 형태는 네 각을 죽인 마름모꼴이다.
양날 돌도끼는 전쟁과 수렵용으로 이용되거나 나무를 벌채·절단·절개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석기시대 중기부터 청동기시대에 걸쳐 한반도 전역에 분포한다. 이 역시 실생활에 직접 사용했던 도구로써 인부와 몸통에 많은 박락 현상이 확인된다.
[현황]
기성읍성 안에는 현터로 전해오는 옛터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대밭이 무성하여 별도의 정밀 조사가 이루어져야만 그 규모를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