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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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正明村記 |
영어의미역 | Literary Work of Jeongmyeong Village Written by Yi Sanha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갑규 |
성격 | 기문(記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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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이산해(李山海)[1539~1609] |
창작연도/발표연도 | 조선 중기 |
[정의]
조선 중기 이산해가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유배되어 있을 때 정명리에 사는 황응청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글.
[개설]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조카이며 이지번(李之蕃)의 아들로 대북파의 영수로 활약한 수상이다. 1592년(선조 25) 대관(臺官)의 탄핵을 받아 중도부처(中途付處)의 형을 받고 기성면 황보리에 5년간 정배(定配)되었다.
유배 생활 중 정명리(正明里)에 사는 대해(大海) 황응청(黃應淸)과 교분이 두터웠으며, 그와의 대화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정명촌기」는 이산해가 황응청과 학문을 토론하다가 그가 일러준 교훈을 잊지 않으려고 남긴 글로서, 『아계유고(鵝溪遺稿)』권3, 「기성록(箕城錄)」 잡저(雜著)에 실려 있다. 현재 평해황씨 해월종택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정명촌기」는 이산해가 황응청과 대화한 글로서 동(動)·정(靜)·득(得)·실(失) 등에 대해 문답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산해는 「정명촌기」의 말미에 “대해의 말에 감복하고 시일이 지나 혹 잊어버릴까 염려하여 그와 문답한 말을 기록하여 「정명촌기」로 삼아 때로 살펴보면서 자성하고자 한다”고 밝혀 두었다.
[의의와 평가]
「정명촌기」는 조선 중기 8대 문장가로 알려진 이산해가 월송정 북쪽으로 15리 떨어진 정명촌에 대해 쓴 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산해와 울진, 그리고 그의 벗 황응청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