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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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母岳山 |
영어공식명칭 | Moaksan Mountain |
이칭/별칭 | 금산(金山)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구이면 원기리|구이면 항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봉준 |
전구간 | 모악산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전주시 완산구 중인동|김제시 금산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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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모악산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구이면 원기리|구이면 항가리 |
성격 | 산 |
높이 | 794m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와 원기리, 항가리에 걸쳐 있는 산.
[명칭 유래]
예부터 엄뫼, 큰뫼로 불려온 모악산은 정상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쉰길바위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과 같아서 ‘모악산’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고려사』의 기록에 “태조 18년 을미(935년) 봄 3월에 견훤의 아들 신검(神劒)이 그 아버지를 금산(金山)의 절에 가두고, 그 아우 금강(金剛)을 죽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까지는 ‘금산’이라 불린 것으로 추측되며, 『신증동국여지승람』 33권 전주부(全州府)에 “무악산(毋岳山)-부의 서남쪽 20리에 있다. 금구현(金溝縣) 조에도 있다” 라고 되어 있어 조선시대에는 ‘무악산’이라고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무악(毋岳)’이라 기록된 것은 ‘모악(母岳)’을 잘못 표기한 것이다. 『금산사지』에 따르면 어머니의 뫼라는 뜻의 ‘엄뫼’는 ‘모악’이라 의역하고 ‘큰뫼’는 ‘큼’을 음역하여 금(金)으로 하고 ‘뫼’는 의역하여 산(山)으로 하였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미루어 볼 때 금산사(金山寺)의 이름도 여기에서 연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환경]
모악산의 서쪽은 탁 트인 넓은 김제평야이며 남쪽으로 국사봉, 동쪽으로 구이저수지를 건너 경각산, 고덕산을 볼 수 있다. 모악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동쪽은 구이저수지를 거쳐 삼천에 이르며 북쪽은 독배천을 지나 삼천에, 남쪽은 안덕저수지, 계월천을 지나 삼천으로 유입하여 만경강에 합류하고 서쪽은 원평천을 거쳐 동진강에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든다. 장군봉, 무제봉, 눌연계곡, 금동계곡, 선녀폭포 등의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다.
[현황]
모악산의 전체 면적은 약 42.22㎢이며 이 중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에 해당하는 면적은 10.87㎢이다. 나머지는 전주시 완산구 중인동 3.13㎢, 김제시 금산면 29.22㎢이다. 모악산은 논산시 두마면의 신도안(新都安), 영주시 풍기읍의 금계동(金鷄洞)과 함께 대표적인 명당이라 하여 난리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이자 각종 무속신앙의 본거지로 알려져 왔다. 『한국신흥종교총람』에 의하면 40여 개에 가까운 교단들이 있어 계룡산보다 많으며 대부분 증산계(甑山系)라고 한다.
모악산은 전주시민을 비롯한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으로 많은 산행길이 있으며 특히,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상학마을에서 출발하여 대원사와 수왕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에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모악산 관광단지에서부터 대원사까지는 상대적으로 완만한 경사의 계곡길을 오르나, 대원사에서 수왕사까지는 급경사로 오르는데 힘이 든다. 수왕사 쉼터에서 비탈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으로 가는 능선을 만나며 여기서 약 0.8㎞만 더 오르면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에 있는 KBS 송신소 옥상까지 개방되어 있어 이곳에 오르면 구이저수지, 전주시가지와 멀리는 변산반도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대원사에 다다르기 전에 안내판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한 때 북한 김일성 선조의 무덤이라 하여 이슈가 되었던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의 묘소가 있다. 모악산 관광단지에는 전라북도립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