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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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1872年 郡縣地圖 全州府 |
영어공식명칭 | 『1872 Gunhyeonjido』「Jeonjubu」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상호 |
[정의]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군현지도(郡縣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전라도 「전주부(全州府)」 지도.
[개설]
『1872년 군현지도』는 고종 9년(1872)에 국가 지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1872년 3월부터 6월까지 전국의 각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된 지도를 도(道) 별로 수합하였는데, 그 수는 모두 461점으로 경기도 40점, 충청도 52점, 전라도 84점, 경상도 106점, 강원도 28점, 황해도 42점, 평안도 85점, 함경도 24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안에는 영진(營鎭), 산성(山城), 목장(牧場) 지도 139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서 「전주부」 지도는 전라도 편에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 전라북도 전주시, 완주군, 삼례읍, 봉동읍, 용진읍, 소양면, 상관면, 구이면, 이서면, 익산시 익산 시내, 오산면, 왕궁면, 김제시 금산면 일부,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일부 지역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제작 발급 경위]
『1872년 군현지도』는 흥선대원군이 주도하여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확립하고 정치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각 지방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삼정(三政)의 문란을 바로잡고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1871년에 전국적인 읍지(邑誌) 편찬사업을, 이듬해인 1782년에는 전국적인 차원의 지도제작 사업을 추진하였다. 1872년 3월부터 6월까지 전국의 각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된 지도를 도별로 수합하여 중앙으로 진달하였는데 전국 각지에서 취합된 지도는 모두 461점이다.
[형태]
『1872년 군현지도』는 전국 각지 군현의 지도뿐만 아니라 영진(營鎭), 산성(山城) 목장(牧場) 지도 등 군사시설을 그린 지도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각 지도들은 대체로 큰 낱장의 지면에 그린 채색 필사본으로, 지역마다 한 장씩 그려져 있다. 지도를 펼쳤을 때, 가장 작은 지도는 34.4㎝×50㎝, 가장 큰 지도는 146.7㎝×114㎝로 크기가 서로 다르지만 첩장(帖裝)의 크기는 35㎝×25㎝로 동일하다. 일부 지도첩에는 지도를 간행한 날짜와 관직명이 새겨진 관인(官印)이 찍혀 있어 제작시기와 참여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구성/내용]
「전주부」 지도에서 읍치는 전주시 경원동, 중앙동, 풍남동 일대의 성곽 안에 있었다. 지도 상단의 건치연혁에 의하면 전주는 백제시대에는 완산, 비사벌, 비자화로 불리웠고, 신라시대에는 완산부, 완산주로 불리웠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립해서 도읍을 세웠고, 고려시대에는 안남도호부, 전주목, 완산부로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어향(御鄕)으로 완산유수부로 승격되었고, 태종 3년에 전주부로 개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남쪽 병영까지 330리, 좌수영까지 380리, 우수영까지 470리, 동남쪽 통영까지 480리, 북쪽 서울까지 516리이다. 사창(社倉) 31곳, 면(面) 30개, 관방(關防)시설은 상관면의 만마관(萬馬關), 포구(浦口)는 이서면 동지산(東止山)에 있으며, 봉수(烽燧)는 없고, 애구(隘口)는 구이동 유점(鍮店)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태는 전주성 읍치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산과 하천이 위치하여 풍수지리적인 배치를 하고 있다. 중앙에 전주성과 행정관서들이 그려져 있는데 객사(客舍), 선화당(宣化堂), 내아(內衙), 관청(官廳), 군청(軍廳), 향청(鄕廳), 향교(鄕校), 명륜당(明倫堂), 선자청(扇子廳), 만화루(萬化樓), 난후청(欄後廳), 군기(軍器), 경기전(慶基殿), 형리청(刑吏廳), 호조창(戶曺倉)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구이동면(龜耳洞面), 난전면(薍田面), 남이도면(南二道面), 남일면(南一面), 동일면(東一面), 봉상면(鳳翔面), 부남면(府南面), 부동면(府東面), 부북면(府北面), 부서면(府西面), 북일면(北一面), 상관면(上關面), 서일면(西一面), 소양면(所陽面), 양량소면(陽良所面), 오백조면(五百條面), 용진면(龍進面), 우동면(紆東面), 우림곡면(雨林谷面), 우북면(紆北面), 우서면(紆西面), 이남면(伊南面), 이동면(利東面), 이동면(伊東面), 이북면(利北面), 이북면(伊北面), 이서면(伊西面), 조촌면(助村面), 초곡면(草谷面), 회포면(回浦面)으로 구분되어 있다. 주요 산으로는 가련산(可連山), 건지산(乾止山), 검률당(檢律堂), 경각산(擎角山), 고덕산(高德山), 곤지산(坤止山), 기린봉(麒麟峯), 다가산(多佳山), 대둔산(大芚山), 동지산(東止山), 모악산(母岳山), 사자산(獅子山), 완산(完山), 황방산(黃尨山)이 있으며, 사찰로는 귀신사(歸信寺), 다남사(多男寺), 대원사(大院寺), 미륵사(彌勒寺), 봉서사(鳳棲寺), 서고사(西固寺), 원등사(遠登寺), 장불사(長佛寺)가 보인다. 역원(驛院)으로는 반석역(半石驛), 삼례역(參禮驛), 소치점(掃峙店), 신원(新院), 안덕원(安德院), 유점(鍮店), 청도원(淸道院)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조경묘(肇慶廟), 사직단(社稷壇), 성황사(城隍祠), 만경대(萬景臺), 오목대(梧木臺), 황학대(黃鶴臺), 한벽당(寒碧堂), 만마관(萬馬關), 위봉산성(威鳳山城), 덕진제(德津堤), 인봉제(麟峯堤), 모고지(慕古池), 현무지(玄武池), 황천진(荒川津), 동지산포구(東止山浦口)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1872년 군현지도』는 조선왕조에서 시행한 전국 군현지도 편찬사업의 마지막 성과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지도는 이전의 관찬(官撰) 군현지도집과 달리 단 기간 내에 작성되면서 통일성은 결여되었지만 당시 지방사회의 모습을 여과 없이 가장 상세히 보여주는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19세기 말 변화된 정치, 경제, 군사, 행정, 인문, 사회, 역사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기존의 회화식 군현지도 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제작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욱이 「전주부」 지도는 다양한 색으로 지리 정보를 구분하고 있으며, 약 459개의 지명이 수록되어 있으며, 상단에는 인문 사회적 정보를 담고 있어 당시 제작된 지도 중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