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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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地理志 |
영어공식명칭 | Jiriji (Geography Secti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
집필자 | 최진성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의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지리지.
[개설]
조선시대 전주부의 해당 지역과 고산현 관련 지역의 지리지를 말한다. 완주군은 전주부와 고산현에 속한 지역이었다가 1935년에 전주군에서 분리되었다. 당시까지 전주부에 속한 완주 지역은 용진면, 봉동면, 삼례면, 이서면, 구이면, 상관면, 소양면 등이다.
[전주부 관련 지리지]
『전주부읍지(全州府邑誌)』[奎 17397, 1760년경, 1책 12장, 30×21.2㎝]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전주부 기록을 기초로 작성하였으며, 영조 연간 『여지도서(輿地圖書)』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지방의 통치정보 수집을 위해 만들어진 읍지로 추정된다. 『여지도서』에는 전주읍지가 빠져 있어 18세기 전주 지역 자료를 보완할 수 있는 주요 자료이다. 『전주부읍지』는 읍지의 일반적인 항목 외에도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등의 기록이 매우 상세하여 18세기 전주부의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전라도전주익산여산영암읍지(全羅道全州益山礪山靈巖邑誌)』[想白古 915.14-J459, 1792년경, 1책 66장, 23×21.6㎝]는 정조대 전라도 전주(全州), 익산(益山), 여산(礪山), 영암(靈巖) 등 4개 군현의 읍지(邑誌)를 합철한 책이다. 특히, 익산과 여산은 과거에 전주에 부속된 적이 있는 고을이므로 일종의 전주문화권을 묶은 듯하다. 『전라도전주익산여산영암읍지』는 『전주부읍지(全州府邑誌)』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완영각고사례(完營各庫事例)』[古 4259-76, 1767~1827년, 3책, 26×23.5㎝]는 전라도 감영의 재정을 정리하였고, 1895년에 만들어진 『호남영사례(湖南營事例)』[奎貴 12201, 1책 179장, 28.6×18㎝]는 내제(內題)에 명기된 ‘전주부각방사례(全州府各房事例)’를 볼 때 전주부(全州府)의 재정을 기록한 것이다. 본 사례는 전주부와 대별되는 전라도 감영을 중심으로 하는 재정운영에 대한 상세한 정황과 지방사회의 경제규모를 파악하는데 효과적인 자료이다.
『완산지(完山誌)』[奎 12271, 1905년경, 1책 184면, 28.7×19.6㎝]는 편제상 상·하권으로 나뉘어 있다. 상권은 일반적인 읍지와 유사한 체제를 지니고 있으며, 지역 내의 다양한 사항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하권은 인물(人物)에서는 명신(名臣), 효자(孝子), 효녀(孝女), 효부(孝婦)를 다루었고, 과환(科宦) 항목에서는 유림(儒林), 음사(蔭仕), 생진(生進) 등에 대한 사항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읍지는 대한제국기 전주군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고산현 관련 읍지]
『고산읍지(高山邑誌)』[奎 17399][1780년, 1책 4장, 30.1×31.1㎝]는 『여지도서(輿地圖書)』[고산현]의 체재와 내용을 상당 부분 따랐다. 또한 호구(戶口)를 비롯한 각 항목의 통계도 『여지도서』에 기재된 수치를 수정하여 기록해서 시계열적인 통계 비교 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 『고산읍지(高山邑誌)』[1871년, 1책 23장, 29.4×22.2㎝]는 다른 읍지들에 비해 항목의 설명도 자세하고 읍사례(邑事例)에 해당되는 내용도 풍부하게 실려 있다. 읍사례는 각 읍의 재정 규례와 운영 상태를 정리해 놓은 자료를 말한다. 『고산읍지』[1871]에는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誌)』[1871] 제4책에 속한 고산읍지와 『고산읍지』[1780]에 수록되지 않은 읍사례에 해당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고산읍지』[1871]에 수록된 항목들은 『여지도서』의 고산읍지나 『고산읍지』[1780]와 대략 비슷하지만, 내용은 훨씬 상세하여 새롭게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호남읍지(湖南邑誌)』는 1871년 제1차 총10책, 1895년 제2차 총18책, 1899년 제3차 총15책 등 3차례에 걸쳐서 편찬되었다. 조선 전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영조 연간]의 『여지도서』 이후 처음으로 도단위로 제작한 읍지에 해당한다. 주된 내용은 제1차 『호남읍지』[奎 12175, 1871년, 10책, 30.4×19.9㎝]가 18세기 정조 연간 시도된 『여지도서』의 보완작업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이후의 증보된 읍지들과 지역전통을 수록한 사찬읍지(私撰邑誌)의 성과 등 고종 당대에 수집 가능한 거의 모든 자료를 집대성하였다. 제2차 『호남읍지』[奎 12181, 1895년, 18책, 28.7×17.9㎝]는 상대적으로 내용을 많이 요약하고 읍사례들을 추가하면서 통치행정용으로 재구축되었다. 제1차 『호남읍지』[1871]가 과거 전통을 집대성하여 풍부한 지방자료를 중앙에서 수집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제2차 『호남읍지』는 갑오개혁으로 근대화사업에 꼭 필요한 부세행정 정보만을 별도로 가려서 뽑은 점이 특징이다. 제3차 『호남읍지』는 제2차본의 사례에 역지나 진지를 목장지와 함께 종류별로 별록(別錄)하였다. 제1차본이 각 읍별로 진지 혹은 읍지와 사례가 정연하게 실려 있는 반면에, 제2차 및 제3차본은 짧은 기간에 대규모 정보의 파악을 시도하여 오류도 많이 발견된다.
『전라북도각군읍지(全羅北道各郡邑誌)』[고산군, 奎 10770, 1책 152장, 33.3×23.5㎝]는 1899년(광무 3)의 전국 읍지상송령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각군읍지(各郡邑誌)는 광무연간에 작성되는 읍지의 전형적인 양식을 띠고 있으며, 이때 작성된 개별읍지를 모아서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통일된 항목은 지방제도 및 지방재정 실태 파악에 용이한 항목들로 구성되었다. 『전라북도각군읍지』는 대한제국기 전라북도를 포함한 고산군의 사정을 개략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