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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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才南所 |
영어공식명칭 | Jaenamso (Special Districts of Goryo Dynast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박노석 |
개정 시기/일시 | 1409년 - 재남소 전주부 양량소면에 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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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재남소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
관할 지역 | 재남소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남정동 |
관할 지역 | 재남소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
[정의]
고려시대부터 조선초까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북부 일대에 설치되었던 특수행정구역.
[개설]
재남소는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북부,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남정동 일대에 있었던 특수행정구역으로, 재남소 치소는 전주시 남정동 재남마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재남소는 특수행정구역으로 전주관내에는 마천소(馬川所)와 재남소(才南所)가 있었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 151권 지리지 전라도 전주부 김제군 조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鄕二, 堤見、鳴良]. 所二, 馬川、才南].[중략] 才南姓一, 李”
『여지도서』 보유편 김제 조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場市 邑內場[在官門外] 才南場[在郡東三十里] 松亭場[在郡東二十里] 院基場[在郡南三十里] 禾橋場[在郡西十五里] [중략] 橋梁 才南橋[在郡東三十里] 禾橋[在郡西十五里] 浦橋[在郡南十五里]”
『신증동국여지승람』 김제군 고적 조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재남소(才南所) 군의 동쪽 30리에 있다.”
『대동지지』 김제군 조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재남소(才南所)는 동쪽으로 30리이다. [중략], [교량] 재남교(才南橋) 동쪽으로 30리이며, 삼례(參禮)로 가는 길이다.”
[내용]
재남소(才南所)는 마천소(馬川所)와 함께 전주부 김제군에 속해 있던 2개 소(所) 중 하나이다. 재남소는 김제치소에서 동으로 30리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재남장과 재남교가 있었다. 재남소의 영역은 대체로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전라북도 전주시 남정동 지역으로 추정된다. 재남소는 조선 초기에 김제군의 직촌으로 편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웃한 전주부에 속해 있던 양량소는 1409년(태종 9)에 전주부 양량소면으로 편제되었다. 재남은 1789년(정조 13)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호구총수』에 따르면 김제 금굴면(金堀面)에 속해 있었다. 당시 금굴면에는 송삼리(松三里), 대야리(大也里), 마교리(馬橋里), 영등리(永登里), 장산리(長山里), 금굴리(金堀里), 재남리(才南里), 하금굴리(下金堀里), 이작리(伊作里) 등이 있었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모촌면(母村面)의 이작리(伊作里)[『호구총수』에는 금굴면에 속해 있었으나, 모촌면으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 신정리(新井里), 금굴면의 재남리, 회포면(回浦面)의 도도리(道道里), 전주군 이서면의 신기리(新基里)·매암리(梅岩里)의 각 일부를 병합해 재남과 신정의 이름을 따서 남정리라 하고 김제시 용지면에 포함되었다. 이때 재남은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남정리에 포함되었다. 1994년 12월 22일자로 금평리는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 재남소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남정리는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남정동으로 편입되었다.
[변천]
재남소(才南所)는 조선 초기까지 있었던 소로 전주부 김제군의 직촌으로 편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