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3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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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現代 |
영어공식명칭 | Moder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상원 |
[정의]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라북도 완주군의 역사와 문화.
[개설]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시 전라북도 완주군은 15개 면을 관할하고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는 좌우익에 의해 번갈아 양민학살이 일어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여당을 지지하는 농촌 지역의 특성상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초기에는 자유당과 공화당을 지지했지만, 1971년 이후로는 지역감정이 심화하면서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을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지했다. 전라북도 완주군은 원래 농업을 기반으로 한 지역이었으나 산업화와 함께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산업구조가 변해가고 있다. 1970~1980년대 계속 감소하던 인구가 1990년대 이후 산업단지의 조성과 함께 정체 상태에 있지만, 노령인구의 비율이 높아져 가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치]
1948년 5월 10일 제헌의회 선거가 시행되었다. 갑구, 을구로 나뉘어 치러진 제헌의회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유준상과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의 이석주가 당선되었다. 이때 각각 8명의 후보가 나와 전국적으로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지역의 하나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50년 5월 30일 실시된 제2대 선거에서는 갑구, 을구 모두 무소속인 박양재와 박영래가 당선되었는데, 박양재는 나중에 자유당에 입당했다. 1952년 사사오입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의 기반을 마련하고 독재의 길을 걷던 이승만 정권은 결국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분노해 폭발한 4·19혁명에 의해 막을 내렸다. 4·19혁명 이후 수립된 제2공화국를 만든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갑구, 을구 모두 민주당이 당선되었다.
한편 1952년 4월에 제1대 도의회 의원 선거가 치렀다. 그러나 당시 치안 사정이 여의치 못했던 전라북도 완주군은 이듬해인 1953년 5월 30일에야 도의원 선거를 할 수 있었다. 선거 결과 전라북도 완주군에서는 유종상 등 4명이 당선되었는데, 모두 당시 여당이던 자유당 소속이었다. 1956년의 제2대 지방의회 선거에서는 자유당 2명, 민주당 1명, 무소속 1명이 당선되었다. 4·19 혁명 이후 실시된 제3대 도의회 선거에서도 자유당 2명, 민주당 1명, 무소속 1명이 당선되었다. 이후 개발독재를 지향했던 5·16 군사정부에 의해 지방자치제는 사라지고 말았다.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의 공화당은 6~8대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그러나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위해 지역감정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이후 완주군은 호남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모든 선거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철승, 김태식 등 완주 출신의 유력한 야당 정치인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선거구가 김제시와 통합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부터는 완주 출신 국회의원이 나오지 않고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 전라북도 진안군, 전라북도 무주군, 전라북도 장수군이 통합되어 치러진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전라북도 진안군 출신 더불어민주당 안호영이 당선되었다.
그리고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함에 따라 1995년 6월 실시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 임명환이 당선되어 초대 민선 완주군수가 되었다. 1998년에 실시된 2대 선거에서도 임명환이 재선되었다. 이후 3기 최충일, 4~5기 임정엽을 거쳐 6기 민선 군수를 역임한 박성일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재선되어 7기 민선 군수로 재직하고 있다.
[경제구조]
전라북도 완주군은 전라북도의 중앙에 위치한 전라북도 전주시를 에워싸는 형상을 보이는데, 동남으로는 산악지대가, 서북으로는 넓은 평원을 이루고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은 74%가 임야로 대부분 산지로 구성되어 있어 경지는 적지만, 경지의 82%가 해발 100m 이하에 분포되어 있어 비교적 양호한 경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화의 과정에서 농가인구는 계속 감소했다. 1965년에 15만 명에 이르던 농가인구는 1994년에는 4만 3천 명에 불과해졌다. 이런 환경에서 전라북도 완주는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과수, 채소 등의 상업적 농업을 발달시켜 왔다. 한편 1960~1970년대 산업화의 과정에서 전라북도 완주군 역시 제조업을 발전시켜 왔는데, 1987년 지정되어 개발된 이서특별농공단지와 1989년 완주공단, 그리고 1992년 한지단지 등이 차례로 조성되었다. 또한 2000년대 들어서면서는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에 완주테크노밸리와 과학산업단지 등이 조성되면서 전라북도 완주군의 산업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행정구역과 인구]
1945년 전라북도 완주군은 15개 면을 관할하고 있었다. 1956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57년에는 전라북도 완주군 초포면과 전라북도 완주군 우전면 일부가 전라북도 전주시로 편입되었다. 1966년에는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에 경천출장소가 설치되었는데, 경천출장소는 1989년에 경천면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전라북도 익산군 온수리 화산마을이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에 편입되고,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산정리 일부가 전라북도 전주시 우아동에 편입되었다. 1983년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대성리·색장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산정리 일부가 전라북도 전주시로 편입되었고,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도덕리 일부가 전라북도 완주군 조촌면에 편입되었다. 1985년 전라북도 완주군 조촌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87년 전라북도 전주시에 편입되었고, 1990년에는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중리와 상림리가 전라북도 전주시에 편입되었다. 1994년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금계리 일부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 편입되었다. 2005년 10월에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일원이 전라북도 혁신도시로 선정되었다. 2012년 7월 완주군청사를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지암로 61[운곡리 975-78]로 이전했다. 2015년 10월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이 용진읍으로 승격되었다.
전라북도 완주군의 인구는 해방 이후 1950년대에는 완만한 증가를 하다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빠른 증가 추세를 보여 1965년에 187,396명으로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점차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가 나타났고 1980년대 이후로는 매우 급격한 인구 감소를 했다. 1989년에는 10만 명 이하로 감소했고, 1993년에는 87,543명이 되었다. 이는 산업화의 진전과 함께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는 일반적 현상에 따른 감소였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는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일원에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감소 추세가 멈춰 인구가 9만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 60대 이상의 인구가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