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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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洲面戰鬪 |
영어공식명칭 | Unjumyeon Battl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상원 |
전개 시기/일시 | 1952년 7월 - 운주면전투 빨치산 소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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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장소 | 운주면전투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
성격 | 빨치산 토벌 작전 |
관련 인물/단체 | 황월주 |
[정의]
한국전쟁 당시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에서 황월주가 유격대를 조직해 펼친 빨치산 토벌작전.
[개설]
한국전쟁 당시 완주군 운주면의 황월주는 유격대를 조직해서 1950년부터 1952년까지 빨치산 토벌작전을 펼쳐 많은 공적을 세웠다.
[역사적 배경]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게 점령당했던 전라북도 완주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서 1950년 9월 28일 국군에게 수복되었다. 퇴로가 끊긴 북한군은 지리산, 덕유산, 백운산 등지로 숨어들어 빨치산이 되었다. 산악지대였던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에도 빨치산이 출몰하자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주민들은 유격대를 조직해서 빨치산 토벌작전을 벌였다.
[경과]
운주면 가천리[현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구재마을 출신인 황월주는 국군이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을 탈환하자 전주경찰서 사찰유격대에 자진 입대해 대원 20여 명을 이끌고 마을을 자체 방어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운주면 가천리 신흥마을 뒷산에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곧 수색작전을 펼쳐 빨치산 3명을 사살하고 무기를 노획했다. 그 후 다시 운주면 가천리 신흥마을 뒷산에 숨은 빨치산 2명도 사살했다. 1952년 7월 중순 경에는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용복리[현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용복리] 만수동마을에서 빨치산 4명을 사살하기도 했다. 돌아오던 중 운주면 가천리 구재마을에서 매복해 빨치산 2명을 사살했다. 이 공로로 정부에서는 황월주를 전주경찰서 사찰유격대장으로 임명했다.
[결과]
황월주와 황월주부대는 전라북도 완주군 일대뿐만 아니라 전라북도 임실군까지 나아가서 빨치산 15명을 사살하고, 전라남도 순창시 까치골에서는 군경 합동작전에 참가해 150여 명의 빨치산을 토벌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의의와 평가]
한국전쟁 당시 후방에서 주민들로 구성된 유격대를 조직해서 빨치산 소탕작전 전과를 올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