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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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夜山山城 |
영어공식명칭 | Baemaesanseong Fortress |
이칭/별칭 | 야산산성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 946|용암리 772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원종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9년 12월 31일~2000년 2월 19일 - 배매산성 배수지 조성으로 인한 발굴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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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7년 6월 8일~2017년 11월 30일 - 배매산성 한국매장문화재협회 비지정 매장문화재 학술조사 |
현 소재지 | 완주 배매산성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 946|용암리 772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전주박물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249 |
출토 유물 소장처 | 전라문화유산연구원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메너머3길 5-4 |
성격 | 토성 |
양식 | 테뫼식 토축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526m[둘레]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에 자리하고 있는 삼국시대 토성.
[개설]
배매산성은 해발 121m 내외의 배매산에 흙으로 쌓은 백제시대의 토성이다.
[건립 경위]
배매산성은 축성과 관련한 기록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1960년대 지표조사를 통해 알려졌다. 처음에는 ‘야산산성(夜山山城)’으로 불렸으며, 당시 지표상에서 백제시대의 토기와 기와 조각이 채집되어 백제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2000년의 발굴조사를 통해 배매산성 안에서 담수지(潭水址), 목책열(木柵列), 주거지 등이 조사되었고, 성 밖에서는 원형수혈(圓形竪穴)[원형 구덩이]과 주거지 등이 확인되었으며, 그릇받침토기[器臺], 삼족토기(三足土器) 등이 출토되었다. 2017년의 발굴조사에서는 영정주(永定柱)[나무기둥]를 중심으로 한 성토(盛土) 및 삭토(削土), 보축(補築)[건물이나 구조물 등을 보충해 지은 구조물], 피복(被覆) 마감 등의 축성법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유물 양상과 토축법을 통해 배매산성은 5세기 중후엽에 초축(初築)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배매산성은 삼례읍과 봉동읍을 잇는 지방도 799번 도로 중간쯤 북쪽에 조성된 완주 일반산업단지의 서쪽에 자리한 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배매산성의 바로 남쪽에는 완주산업단지 정수장이 인접해 있다.
[형태]
배매산성은 해발 121.6m의 산 정상부에 남-북 방향[길이 220m, 너비 80m 내외]으로 장타원형(長楕圓形)[길이가 폭의 2배 이상으로 보통의 타원형보다 길며 양쪽의 긴 측면이 평행한 모양] 평면 형태를 하고 있으며, 산봉우리와 9부 능선을 감싸고 있는 테뫼식[山頂式]의 형식을 띠고 있다.
[현황]
배매산성은 해발 121.6m의 배매산 정상부와 9부 능선을 감싸고 있는 토축성(土築城)이다. 배매산성의 주변은 만경강(萬頃江) 일원에 넓은 충적지가 조성되어 있어 그리 높지 않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사방이 잘 조망되고 멀리에서도 배매산성이 보인다. 1960년대 지표조사 당시에는 배매산성 동벽과 서벽에 성문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두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배매산성 내부에는 담수지(潭水址), 건물지(建物址), 목책열(木柵列), 토성 등이 확인되었고, 성 밖에서는 다수의 원형수혈(圓形竪穴) 등이 조사되었다. 담수지는 네모형태로 암반층을 파낸 후 진흙으로 바닥과 벽을 발라 물이 새지 않게 한 것으로, 성에서 가장 중요한 식수를 보관하는 장소이다. 이 담수지 내부에서는 삼족토기(三足土器), 그릇받침토기[器臺] 등의 제사용(祭祀用) 토기가 다수 출토되어서 의례(儀禮)와도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담수지를 비롯하여 그 주위에 목책을 둘러 토성의 안쪽에 이중의 방어시설을 구축하였다. 목책 밖의 주위에는 경사면을 계단형식으로 조성한 후 단면 ‘ㄴ’자 형태로 경사면을 깎아서 온돌과 화덕 등을 시설한 건물지 24기가 조사되었다. 건물지의 밖으로는 토성이 둘려져 있는데, 토성의 상부에는 회랑도(回廊道)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토성 내부에서는 판축(板築)틀의 버팀목인 영정주(永定柱)를 설치하기 위한 주공(柱空)들이 확인되었다. 토성의 축성방식은 먼저 기초부를 잘 다듬은 후 영정주를 세우고 그 중심부를 성토한 후 외측에 보축(補築) 및 굴착(掘鑿), 내측은 평평하게 성토(盛土)하고 나서 다시 성 외측에 재차 보축을 한 후 돌과 점토를 섞은 것으로 덮었다. 이러한 축성기법은 서울 몽촌토성, 화성 길성리 토성, 공주 옥녀봉성 등 백제 토성에 널리 채용되고 있다.
배매산성에서 출토된 유물은 그릇받침토기, 굽다리접시[高杯], 뚜껑[蓋], 삼족토기, 굽다리합[有蓋臺附盒], 장란형토기(長卵形土器)[긴 계란 모양의 토기], 심발형토기(深鉢形土器)[그릇 몸통의 지름보다 속이 깊은 바리], 부뚜막 틀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들 중 그릇받침토기, 유개대부합은 백제의 몽촌토성, 풍납토성 출토품과 유사하다. 특히 굽다리접시, 삼족토기, 굽다리합의 존재로 보아 배매산성은 5세기 중후엽에 처음으로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대부완(臺附碗)[물건을 담아 저장하는 데 쓰는 질그릇, 그릇의 아래위가 좁고 배가 불룩 나온 모습], 접시, 자배기[아가리가 둥글고 넓적한 옹기그릇], 대원공(大圓孔) 시루, 깊이가 얕은 삼족토기 등이 출토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사비(泗沘) 도읍기(都邑期) 직전에 폐성(廢城)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배매산성은 유구와 유물을 통해 백제 한성(漢城) 도읍기(都邑期)에 축성하여 사비 도읍기 이전에 폐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백제 중앙세력의 직접적인 통치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배매산성을 비롯하여 완주군 삼례토성, 용진읍 구억리산성, 상운리 유적과 수계리 유적 등은 5세기 후반 무렵 백제 중앙세력과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성곽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