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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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龍岩遺蹟 |
영어공식명칭 | Historic Site Related to Wonyongam Rock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용암리 원용암마을 일대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한수영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 원용암 유적 지표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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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7년 - 원용암 유적 발굴조사 |
현 소재지 | 원용암 유적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용암리 원용암마을 일대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전주박물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249 |
성격 | 가마 |
크기(높이,길이,둘레) | 1호 가마: 전체 길이 3,450㎝, 소성실 너비 170㎝ 내외|2호 가마: 길이 400㎝, 소성실 너비 170㎝ 내외|3호 가마: 길이 250㎝, 너비 190㎝ 내외|4호 가마: 전체 길이 2,280㎝, 연소실 너비 180㎝ 내외 |
관리자 | 국립전주박물관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용암리 원용암마을 일대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분청사기 가마.
[개설]
원용암 유적은 전주-남원 간 고속국도 구간에 포함되어 2003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진행되었으며, 발굴조사는 2007년 전북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조선시대 분청사기 가마 2기와 폐기물 퇴적층이 확인되었다.
[위치]
원용암 유적은 완주군 상관면 용암리 원용암마을에서 상수골을 따라 북서쪽으로 들어가면 사면 하단부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은 호남정맥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지맥들에 의해 해발 400m 내외의 높은 산들이 에워싸고 있다.
[형태]
원용암 유적의 가마는 해발 230m 내외의 동쪽 사면부에서 확인되었다. 1호 가마는 자연경사면을 이용한 지상식 등요[경사면에 터널형으로 축조된 가마]로 연소실·소성실·연도부[연기가 빠져나가는 부분]를 갖추고 있으며 평면은 세장방형[가는직사각형]을 이룬다. 전체 길이 3,450㎝, 소성실 너비 170㎝ 내외이며, 연도부는 석재를 이용하여 시설하였고, 소성실 끝부분에 초벌 전용칸을 마련하였다. 벽체의 잔존상태로 보아 최소 2차례 이상 가마를 재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2호 가마는 사면과 나란히 조성되었는데, 가마의 규모는 길이 400㎝, 소성실 너비 170㎝ 내외이다. 지상식 등요로 소성실과 연소실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3호는 사면과 나란하며, 남아 있는 규모는 길이 250㎝, 너비 190㎝ 내외이다. 내부에서 초벌구이편과 도지미가 출토되어 초벌구이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4호 가마는 자연경사면을 이용한 지상식 등요로 추정되며, 소성실은 대부분 유실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 전체 규모는 길이 2,280㎝, 연소실 너비 180㎝ 내외이다.
[현황]
원용암 유적이 위치한 곳은 순천-완주 간 고속국도가 개설되었으며, 순천에서 전주 방향으로 용암1터널 입구부에 해당한다.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국고로 귀속되어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출토유물]
원용암 유적에서 조사된 4기의 가마는 동시에 운영된 것으로 판단되며, 내부에서는 발·접시·잔·마상배·병·장군·호 등 다양한 기종의 분청사기가 출토되었다. 유물은 인화문[도장무늬]이 시문된 발과 접시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명문 가운데 ‘內贍(내섬)’명과 ‘恭安(공안)’, ‘恭安府(공안부)’, ‘長興庫(장흥고)’, ‘仁壽府(인수부)’ 등의 명문이 확인되어 중앙관청과 왕실에 납품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분청사기는 고려 후기에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의 중심 가마가 해체되고, 여기에 소속된 장인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소규모의 새로운 가마를 개설하면서, 말기 상감청자의 전통을 계승하여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분청사기 가마는 조선 전기에 전국 각지에서 제작되었는데, 완주 지역에서는 기존에 발굴 조사된 화심리 가마와 함께 이번에 원용암 유적에서 가마가 확인되어, 당시 가마의 제작과 수급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