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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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炳殷 |
영어공식명칭 | Lee Beong-eun |
이칭/별칭 | 자승(子乘),고재(顧齋)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송만오 |
출생 시기/일시 | 1877년(고종14) - 이병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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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2년(고종 29) - 이병은 소과 초시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960년 - 이병은 사망 |
출생지 | 이병은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 |
수학|강학지 | 이병은 강학지 - 남안재(南安齋) |
사당|배향지 | 이병은 배향지 - 전라북도 전주시 교동 남양사(南陽祠) |
성격 | 학자 겸 항일지사 |
성별 | 남자 |
본관 | 전의(全義) |
[정의]
근대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출신의 유학자 겸 항일 지사.
[개설]
이병은(李炳殷)[1877~1960]은 완주 출신의 학자이자 항일지사였다. 현재 전주에서는 이병은을 송기면[1882~1956], 최병심[1874~1957]과 함께 ‘전주의 3재(齋)’라고 일컬으며 칭송하고 있다.
[가계]
이병은의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자는 자승(子乘), 호는 고재(顧齋)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이계회(李啓晦), 증조할아버지는 이영재(李榮在), 할아버지는 이명진(李命鎭)이며, 아버지는 1867년(고종 4)에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교리를 지낸 이봉덕(李鳳德)이다.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며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아들은 이도형(李道衡), 손자는 이남안(李南安)이다. 딸은 전라북도지사를 지낸 송하진의 아버지이자 유명한 서예가인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에게 출가했다. 송성용은 유학자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이병은은 9세 때인 1886년(고종 23)부터 맏형인 이병하(李炳夏)로부터 정자(程子)의 글을 배웠는데, 처음 접한 글도 익숙히 알고 있는 듯 설명하였다고 한다. 14세 때인 1892년(고종 29) 소과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청운(靑雲)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다가 24세 때인 1900년(고종 37)에 이르러 간재(艮齋) 전우(田愚)와 사제(師弟)의 연을 맺으면서 다시 학문에 정진하였다. 1901년(고종 38) 옥구(玉溝)에 있는 송병선(宋秉璿)의 강당(講堂)에서 중용(中庸)을 강의하였다. 1902년(고종 39)에는 전라도 도백(道伯) 이성열(李聖烈)의 추천으로 재랑(齋郞)에 천거되었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일제의 조선 침략 의욕이 본격화되었던 1907년(고종 44)부터는 고향에 돌아와 남안재(南安齋)를 짓고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학문과 강학에 힘썼다. 낮에는 들에 나가 일을 하고 밤에는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고 책을 읽는 생활을 몸소 실천하였다. 1922년 스승 전우가 세상을 떠나자 호상(護喪)을 맡아 보았다. 학문적 동지들이 영파(嶺派)와 호파(湖派)로 갈리었을 때는 중도적 입장에서 서로의 분열을 막기 위해 힘썼다.
이병은은 항일정신도 투철하였다. 전라북도 임실의 유학자 조희제(趙熙濟)가 조선 후기의 비사(秘史)를 엮어 만든 『염제야록(念齋野錄)』에 이병은이 금재(欽齋) 최병심(崔秉心)과 함께 서문과 발문을 써주었는데, 이 일로 인하여 이병은은 조희제와 함께 임실경찰서에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이병은은 또한 일본의 단발령에 반발하여 상투 자르는 것을 끝까지 거부하였다. 1949년 김창숙(金昌淑) 등에 의해 향교위패매안(鄕校位牌埋安) 사건이 일어나자 이병은은 선비로서 죽음을 각오하고 전주향교에서 모시고 있는 위패를 지키기 위해 강경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1956년 고향에 지었던 남안재(南安齋)를 전주향교 뒤편으로 이건(移建)한 후 남안재에서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또한 학문에 전념하여 「일리함만수(一理涵萬殊)」와 「심기설(心氣說)」 등 많은 글을 지었으며, “태극(太極)의 본체가 하나이듯 인성(人性)의 본체도 하나이며, 모든 것은 성(性)에서 근본되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심종설(心宗說)을 반박하여 심(心)의 직분과 기(氣)의 직분이 구분되어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스승 전우의 「성존심비설(性尊心卑說)」을 계승 발전시켰다. 평생 학문의 길만을 걸었던 이병은은 1960년에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이병은의 저서로는 『고재집(顧齋集)』 12권 6책이 있다.
[상훈과 추모]
이병은의 위패는 남안재 뒤편에 있는 남양사(南陽祠)에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