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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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宥鍾 |
영어공식명칭 | Lee Yu-jong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886년(고종 23) - 이유종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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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7년 - 이유종 강도 살인죄로 징역 15년형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18년 - 이유종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유종 애국 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이유종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자 |
[정의]
개항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으로 활동한 의병.
[개설]
이유종(李宥鍾)[1886~1918]은 1906년 완주군 비봉면의 고흥유씨(高興柳氏) 집안 청년들과 항일 구국 투쟁을 함께 하기로 결의하고 의병진에 들어가서 활약했다. 의병 해산 후에는 귀가하지 못하고 각지를 전전하던 중 부일배(附日輩)의 밀고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18년 옥사 순국했다.
[활동 사항]
1906년 면암 최익현이 태인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거의를 선포하자, 이에 자극을 받아 비봉면에 세거하던 고흥유씨 집안에서도 구국의 일념으로 거의를 결정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이유종은 유씨 집안 사람들과 항일 구국 투쟁을 함께 하기로 결의하고 유지명 의병진에 들어갔다. 그리고 고산과 익산 지역에서 1백여 명을 모아 의병단을 조직하고 익산 의병장 이규홍(李圭弘)과 연계하면서 항전을 벌여나갔다. 1906년 11월에는 이동승(李東承)으로부터 2회에 걸쳐 군자금을 모금해서 무기를 만드는 등 활약을 했다. 그 뒤 1909년 9월 일제의 소위 남한대토벌작전(南韓大討伐作戰)이 벌어진 이후 항전을 중단했으나 일제의 보복을 피해 귀가하지 못하고 각지를 전전하던 중 부일배의 밀고로 1916년 6월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1917년 2월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강도 살인죄로 징역 15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8년 8월 15일 옥사에서 순국했다.
[상훈과 추모]
이유종은 1990년 애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