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를 복원하며 과거 정신사적 맥을 잇고 사는 원구제 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1374
한자 傳統文化-復元-過去精神史的-脈-元九梯-
영어공식명칭 Wonguje Village that restores traditional culture and the mind through the ages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훈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에서 고탑제 등의 민속신앙을 지켜오고 있는 마을.

[원구제 마을을 찾게 된 연유]

전라북도 완주군의 마을 조사 작업은 약 20년 전의 자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20여 년 전 기록에는 산신제, 고목제, 거리제, 당산제 등이 많이 행하였고 공동체적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8년 현재 과거에 비하면 급격하게 당산제가 중단된 상태이다. 다만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원구제(元九梯)마을 돌탑제는 지금도 행하여지고 있다. 원구제마을 고탑제는 정월 대보름날 마을 사람들이 함께한다. 원구제마을은 원래 전라북도 고산군 운동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제리, 백석리, 수치리, 수청리를 병합하고 ‘구제리’라 하여 운선면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에 면명이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이 되었다. 원구제마을김해김씨가 이룬 마을이다. 구제마을을 ‘구덕리’라고도 한다. ‘덕’은 ‘터’라는 말로 ‘구덕’은 ‘옛터’라고 한다. 구제리원구제마을 이외에도 원수청, 백석[차독백이]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6.25전쟁 때도 피해가 없던 피난지였다고 한다. 과거 재난이 일어날 때 피난을 하러 가면 안전하다는 열 군데의 지역을 일컫는 십승지(十勝地)와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원구제마을 풍물굿, 마을의 생기 넘쳤던 시절]

음력 정월 대보름날의 마을 축제는 2월까지 이어져 날이면 날마다 풍물굿이 벌어진다. 집마다 마당밟기를 하고 푸짐한 인정 속에서 막걸리와 안주가 나오고 얼큰한 취기에 흥이 나면 꽹과리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원구제마을도 정월 한 달 내내 마당밟기를 하며 지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해 마을의 터 다지기를 하며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다. 여기에서 건립된 돈은 마을 기금으로 사용되었다.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형성되는 계기도 마련해 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수자가 없어 풍물이 약해져 버렸다. 전라북도 완주군 마을 곳곳은 그나마 마을 아주머니들이 나서서 풍물굿을 배우고 때론 마을 신앙을 주도하는 곳도 있는데 이런 마을일수록 마을에 생기가 넘친다.

[돌탑은 왜 쌓는 것일까?]

돌탑은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의 수구막이, 비보(裨補)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일컬어진다. 탑의 명칭은 탑, 조탑, 조산, 돌산, 토담, 수구막이, 거리제, 거리제 잡숫는 탑, 거리제 탑, 거리탑, 독닥거리, 정탑 등으로 불리는데, 각 지역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성(性)에 따라 할아버지 탑, 할머니 탑, 남자 탑, 여자 탑, 내외 탑으로 나뉘며, 위치에 따라 바깥 탑, 안탑으로, 규모에 따라 큰탑, 작은 탑으로 불리기도 하며, 축문에는 영탑지신(靈搭之神)으로 표현되고 있다. 탑의 구성은 기본적으로 기단부, 탑 본체, 탑 윗돌, 내장물 등 네 요소로 구성되며, 돌탑의 형태는 돌을 수북하게 쌓은 누석형, 위아래를 둥글게 쌓은 원통형, 위로 갈수록 좁아지게 쌓은 원뿔형 등이 일반적이다. 탑 윗돌의 명칭은 머릿돌, 동자석, 남근석, 입석, 탑선돌, 탑돌, 상부입석, 돌 뚜껑, 미륵, 상투, 대왕대신, 상수, 어른 등으로 불리며, 이는 기능과 형태에 따라 달리 불린다. 내장물은 전라북도 무주군에서는 숯과 소금이, 충청남도 금산군 지방에서는 오곡을 넣는 항아리, 쇠스랑, 금두꺼비, 부적, 숯 등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내장물 역시 기능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탑에 대한 제사는 마을에 세워진 탑 자체만을 대상으로 모셔지기도 하고, 혹은 숲, 선돌, 장승, 짐대 등과 함께 모셔지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탑이 세워지는 위치는 일반적으로 마을 입구 양쪽이나 마을 앞, 뒤에 세워진다. 탑의 수는 2기가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기, 3기 심지어는 7기까지 세워지는 예도 있다. 탑 윗돌은 없거나 단순히 선돌을 올리는데, 이때 탑 윗돌은 1기에서 5기까지 올린다. 선돌이 아닌 거북, 두꺼비, 부처상 등을 올리기도 한다. 탑이 축조되는 연원은 마을에 어떤 커다란 재앙이 일어난 후 이를 막기 위한 방책에서 축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탑은 서낭당과 같이 자연적으로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성된다. 그리고 탑의 조성은 지관이나 무당들의 권유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적 의식의 전제하에 세워진다.

특히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원구제마을 돌탑은 마을의 수구막이로 세워졌다. 마을 앞으로 수구(水口)가 있어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이를 비보(裨補)할 목적으로 돌탑이 세워진 것이다. 수구막이의 의미는 남다르다. 『택리지』에서는 풍수적 수구막이 역할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무릇 수구(水口)가 엉성하고 넓기만 한 곳은 비록 좋은 밭 만 이랑과 넓은 집 천 간(間)이 있어도 다음 세대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저절로 흩어져 없어진다. 그러므로 집터를 잡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꼭 닫히고 그 안에 들이 펼쳐진 곳을 구해야 한다. 산중에서는 수구가 닫힌 곳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들판에서는 수구가 굳게 닫힌 곳을 찾기 어려우니 반드시 거슬러 흘러드는 물이 있어야 한다. 높은 산이나 그늘진 언덕이나 역으로 흘러드는 물이 힘 있게 판국(版局)을 가로막으면 좋은 곳이다. 이런 곳이라야 온전하게 오랜 세대를 이어 나갈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좋은 땅은 수구가 닫힌 곳이거나 수구막이를 해야 한다. 그 방책으로 돌탑을 세워 풍수적으로 마을의 허(虛)함을 채웠다. 돌탑신앙은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동제(洞祭)로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돌탑신앙, 원구제 마을에서는 고탑제라 부른다]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원구제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초 열 나흗날 저녁 7시 무렵에 탑제를 지낸다. 마을에서는 ‘고탑제’라 칭한다. 2018년 원구제마을 고탑제 제관은 1956년생 김영규 씨가 맡았다. 과거에는 제관을 선정하는 데 매우 엄격하였으나 요사이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보통 부부가 맡아 제관을 맡는데 남자는 제관, 여자는 제물을 준비한다. 그리고 보통 제관 집 입구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렸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제물은 운주장과 고산장에서 준비한다. 제비는 마을 기금으로 충당한다. 제는 마을 입구 돌탑에서 지낸다. 돌탑은 마을의 수구막이로 본래 마을 입구 논 가운데에 있었으나 새마을운동 무렵에 없앴다. 이후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자 마을 사람들이 논의하여 1994년에 경지정리를 하면서 복원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돌탑이 마을에 있어야 좋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워졌고 지금까지 고천제를 모시면서 마을의 평안과 풍농을 기원하고 있다. 과거 돌탑이 있던 자리에는 동전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돌탑이 마을 사람들의 기원 대상이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다시 돌탑을 조성하면서 항아리 두 개를 넣었는데 그 속에 원구제마을의 역사, 마을지도, 마을 사람 이름을 기록하여 넣었다고 한다. 일종의 타임캡슐을 만들어 넣어둔 것이다. 탑은 원통형으로 높이 2m 정도 크기로 탑 위에는 50㎝ 정도 크기의 선돌이 올려져 있다. 누군가가 돌탑 옆에 감을 따려다가 동티가 나서 한동안 제물을 챙겨 제를 지냈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하는 것에서 보듯, 마을에서는 돌탑을 신성하게 여기고 있다.

고탑제는 오전에 미리 금줄을 치고 옆에 달집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는 달이 뜰 무렵인 7시경에 시작되며, 제물은 돼지머리를 비롯하여 삼색실과 떡, 명태 등이 준비된다. 제는 헌주, 재배, 독축, 소지, 음복 순으로 진행된다. 이때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한다. “유세차 무술년 정월 열 나흗날 감소고우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 고탑님께 고합니다. 구제리에 사시는 남녀노소, 타향에 계시는 남녀노소, 모든 분의 무사태평과 부귀영화를 바라옵고 부자 되게 하여주시옵기를 간절하게 바라옵니다”라는 것이다. 소박한 내용으로 표현된 한글 축문이 낭독되면, 고탑제와 동시에 달집태우기가 이루어진다. 달집은 가운데 지주목을 세운 뒤 소나무 가지를 먼저 세우고 바깥은 대나무를 세운다. 달집은 마을 사람들의 소망을 싣고 활활 타올랐다. 대나무가 터질 때마다 폭죽이 터지듯이 소리를 내며 불꽃은 더욱더 높이 타오르는데, 이러면 풍년이 든다고 마을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달집 주변에서 마을 사람들이 소망을 비는 동안 고탑축제는 무르익어간다. 제가 마무리된 무렵 음복을 하는데 돌탑 옆에 마련된 상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 덕담을 나누기도 한다.

[원구제마을 옛적 놀이, 횃불 돌리기와 쥐불놀이]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원구제마을에서는 어른들이 고탑제를 지내는 동안에 마을 아이들은 쥐불놀이를 한다. 음력 정월 열 나흗날에 관솔[송진]을 가져와 구멍 뚫린 깡통에 넣고 불을 지핀 후에 하늘 높이 던진다. 이때 논두렁에 불을 놓기도 한다. 그리고 횃대에 불을 붙여 횃불 싸움도 많이 한다. 옛날에는 이웃 마을끼리 패싸움이 많이 행하여졌는데 석장마을과 수청마을과 하였다고 한다. 쥐불놀이와 횃불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마을에 미리 알리고 싸움 날짜가 정해지면 산에 가서 관솔과 나무를 준비한다. 보통 정월 대보름날에 쥐불과 횃불을 들고 주변 마을에 싸움을 하러 간다. 상대편에서 불이 날아오면 맞불을 놓는다. 준비한 불이 떨어지면 몸싸움을 한다. 이때 돌싸움을 하기도 하는데 때론 격렬하게 진행하기도 한다. 도망가는 마을이 지게 된다.

[고탑제를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으로 살아가는 원구제 마을]

1970년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마을은 점차 공동화(空洞化)현상이 발생했다. 농촌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통해 현재의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 필요한 실정이다. 마을이란 인간이 서로 얽히고설켜 이루어진 작은 국가와 같은 것인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공동체의 회복이다. 원구제마을은 고탑제를 중심으로 마을공동체를 지속해 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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