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0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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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郭 |
영어의미역 | Castle / Citadel / Castle walls / Fortress |
이칭/별칭 | 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집필자 | 선석열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쌓은 방어 시설.
[개설]
성곽은 본래 내성(內城)만을 뜻하는 성(城)과 외성(外城)을 가리키는 곽(郭)의 합성어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곽은 거주 주체의 일정한 공동 활동 공간을 확보하고 그 구조물이 연결성을 갖는 건조물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축성 재료에 따라 목책·토성·토석혼축성·석성·전축성(塼築城)으로 나눌 수 있으며, 지형에 따라 크게 고로봉·산봉·사모봉·마안봉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산지를 성벽이 둘러싼 모양에 따라 테뫼식·포곡식·복합식으로 나뉜다. 그 외 성곽의 시설로는 성문·수원(水源)·여장(女墻)·배수 시설·창고 시설·암문(暗門)·옹성(壅城)·치성(雉城)·각루(角樓)·해자 등이 있다.
[변천]
일반적으로 방어 시설물은 청동기시대 환호에서 비롯되어 삼국시대에 이르러 돌로 쌓은 석성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의 성곽은 외형적 모습을 갖추었다.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는 청동기시대의 평산리 환호 유적을 시작으로 목책·토석혼축성·석성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성곽이 축조되었다. 5세기 이전에는 목책의 흔적이 있는 순지리 토성이 축조되었고, 신라가 양산 지역을 장악한 5세기 이후에는 왜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삽량성·단조산성·북부동 산성·신기리 산성 등의 테뫼식 산성을 쌓았다.
6세기 이후 신라는 축성 기술을 발전시켜 보다 큰 규모인 우불산성·마고산성 등의 포곡식 산성을 쌓아 방어 체계를 보완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지방 행정 제도를 정비하여 평지성인 양산읍성을 중심으로 이전부터 있었던 단조산성·우불산성·마고산성을 수리하여 군사적 시설을 확충하여 조선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조선시대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는 기존의 성들 외에 또 다른 성들이 축조되었다. 왜적을 막기 위해 민간에서 쌓은 삼호리성이 있고 정유재란 때 조명 연합군에 밀려 퇴각한 왜군이 쌓은 증산왜성과 호포왜성이 낙동강 하류에 있다. 양산 지역의 성곽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으며 양산의 군사적·행정적·전략적 중요성과 양산 지역 사람들의 대외 항쟁 의식을 이해할 수 있다.
[주요 산성]
1. 단조산성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있는 신라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영축산 정상부 위의 자연 암벽을 이용하여 축조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임진왜란 때에 단조산성에 주둔하였던 조선 군이 양산 지역을 침입한 왜군과 가천들에서 싸웠다고 한 점으로 보아 신라시대 이후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단조산성은 통도사 8경 중의 하나로 ‘단성낙조(丹城落照)’로 유명하며, 영축산 정상에 산성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2. 양산 북부동 산성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산성으로 동산(東山)[267.8m]의 9부 능선에 만들어진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남해안에서 낙동강과 양산천을 거쳐 북상하는 외적의 공격로를 차단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축성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주변에서 채집되는 유물과 문헌 기록으로 보아 5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성곽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성문의 초석(礎石)이 남아 있다.
3. 양산 신기리 산성
경상남도 양산시 신기동에 있는 신라시대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양산시 중심부에서 북동쪽 1㎞의 거리에 있는 성황산(城隍山)[330.6m]의 정상부에 축성된 산성으로, 서낭산성 또는 성황산성(城隍山城)이라고도 한다. 성곽의 축조는 성황산 주변에서 쉽게 구해지는 안산암 계통의 자연석을 다듬어 장방형으로 뉘어 쌓고 틈새는 작은 할석으로 메웠다. 현재는 대부분이 허물어지고 일부만 남아 있다.
4. 우불산성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있는 산성으로 천불산 남봉(209.4m)의 정상부 외곽과 남동쪽의 골짜기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축조한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이다. 사용된 석재는 대부분 주변에서 구해지는 할석들이며 부분적으로는 냇돌도 섞여 있다.
건립 경위는 알 수 없지만 내부에서 채집되는 토기편과 서남쪽의 주남리 고분군 등으로 미루어 신라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성벽은 모두 붕괴되어 원상을 유지한 부분은 찾아볼 수 없으며 북쪽 성벽은 납석(蠟石) 채취로 인하여 성벽의 바닥 부분까지 훼손된 상태이다. 현재 동쪽 성벽의 중간 부위인 골짜기에는 관음정사(觀音精舍)가 자리하고 있다.
5. 마고산성
마고산성은 양산시 교동과 원동면 화제리 간 경계를 이루는 오봉산(479.9m)의 9부 능선을 따라 축조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마고산성은 주민들에 의해 ‘할마산성’, ‘마고성’, ‘산성고개’, ‘성산만딩이’ 등으로 불리고 있다. 성의 규모는 양산시에 산재한 여러 성곽들 가운데 가장 크며 포곡식 산성인 점으로 볼 때 7세기 이후에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북쪽 성벽과 오봉산 쪽으로 이어지는 서남쪽 성벽에 무너진 석축이 잘 남아 있다.
6. 순지리 토성
순지리 토성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와 답곡리의 경계부에 있는 노상산[342.7m]의 정상부 외곽을 따라 축조된 포곡형의 테뫼식 토축 산성이다. 성의 축조 연대는 채집된 유물을 근거로 5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순지리 토성의 일부는 양산컨트리클럽이 들어서고 현재 경부고속도로 확장 공사로 일부가 파괴되어 가고 있다.
7. 양산읍성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과 북부동에 있는 고려·조선시대의 양산 지역 중심 행정성이다. 축조 기법은 장대석을 세로로 뉘어 쌓아 기단부를 마련하고, 그 위에 약 20㎝ 정도를 뒤로 물려서 큰 바위의 반듯한 면이 밖으로 나오게 쌓았다. 체성(體城) 벽은 벽돌쌓기식으로 어긋나게 놓아 쌓고 그 틈새는 작은 할석으로 메웠다. 내벽은 잔존 상태가 불량하여 관찰이 쉽지 않은 편이나 체성의 내·외곽 벽면 사이는 잡석으로 메우고 너비 2m 정도로 협축(夾築)하였다. 현재는 도시화 과정에서 대부분 유실되고 성벽의 일부가 중부동 211-1번지 주변에 연한 약 11m 정도 남아 있을 뿐이다.
8. 삼호리 성지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 산성이다. 우불산의 지봉(支峰) 정상부에 있는 석성으로 임진왜란 때 양산 지역 주민들이 왜적을 막기 위해 쌓은 성으로 알려져 있다. 삼호리 성지 안에는 잡목이 무성하여 확실한 구조는 알 수 없으나, 산 정상부의 등고선을 따라 돌로 쌓은 성이다.
9. 증산리 왜성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왜식(倭式) 석성으로 일명 양산성(梁山城)이라고도 하는데, 1597년(선조 30)에 명과 일본 사이에 강화 교섭이 이루어질 때 왜군에 의해 축성되었고, 1598년 정유재란 때 왜군이 다시 수축하였다. 일본식 왜성은 한국의 성곽과 달리 해안에 인접한 구릉이나 산을 선택하여 쌓은 것이 특징이다. 현재 증산리 왜성 주변 일대가 물금 지구 택지 조성 구간 내에 포함되어 공원 지구로 지정·조성될 예정이다.
10. 호포 왜성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왜성 터로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다. 호포 왜성지는 증산성(甑山城)의 예처럼 호포원 지의 석축을 헐어내 왜식으로 재구축한 것이다. 축조 기법은 자연석의 반듯한 면이 밖을 향하게 하여 성석의 모서리를 맞추고 틈새는 할석으로 메웠다. 현재 호포 왜성지는 많이 훼손된 상태인데 전방부인 서쪽은 국도 35번과 촌락 및 농경지 개설, 후방부인 동쪽은 부산교통공단에서 시설하는 부산지하철 기지창 건설로 인하여 파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