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3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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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七賢祠題詠 |
영어의미역 | Attaches a Subject, Poem Recite in Chilhyeonsa Shrin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진 |
[정의]
1835년(헌종1 년) 유공모 등이 칠현사 창건 시에 문화유씨 7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개설]
칠현사는 1835년(헌종 1)에 건립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해방 이후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신축된 것이다. 양산에 있다 해서 양산칠현사라고도 하며, 문화유씨 일문의 사당으로 이곳에 모셔진 칠현은 유자미(柳自湄)·유광선(柳光先)·유정(柳汀)·유영춘(柳榮春)·유백춘(柳伯春)·유득춘(柳得春)·유태영(柳泰英) 등이다.
이들 칠현은 모두 임진왜란 때에 왜적과 싸우다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에 유자미에게는 좌찬성이, 유광선에게는 형조참판이, 유정에게는 호조판서가, 유백춘에게는 오위도총부부총관이, 유태영에게는 호조참판이 증직되었다. 현전하고 있는 「칠현사 제영(七賢祠 題詠)」은 칠현사를 창건할 때에 칠현의 충절을 기리며 운을 같이해서 지어진 것이다.
이때 시를 지은 사람들은 유관모·유공모·유래유·유재형·박규원·송흥래·신영락·송만재·황만종·윤상헌·정현·이기호·유흥경·김재연·박능태 등 15인이었으며, 후에 이인중이 유진룡의 추모시에 차운을 하여 시를 짓기도 하였다. 이들 16인의 시는 모두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칠현사지(七賢祠誌)』에 실려 있다. 양산향교에서 1999년에 펴낸『양산향교지』에는 이들의 시 가운데 유공모와 송만재, 정현의 시가 번역되어 실려 있다.
[구성]
「칠현사 제영」은 이인중이 지은 문화유씨 칠현의 유적에 대한 글을 읽고 이에 그 후손인 유진룡의 추모시에 차운한다고 한「독유씨칠현유적 잉차기후손진룡추모운(讀柳氏七賢遺蹟 仍次其後孫震龍追慕韻)」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게 년(年)·현(賢)·천(天)·현(懸)·전(傳)·자(字)를 압운한 칠언율시이다.
[내용]
「칠현사 제영」은 이인중의 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칠현사의 창건 시에 지어진 것이므로, 압운뿐 아니라 내용도 거의 비슷하다. 유관모의 시처럼 수년의 경영 끝에 마침내 칠현사가 창건하게 되었다는 감흥을 노래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유공모의 시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는 임진왜란 때 왜적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칠현의 충혼과 그에 대한 추모의 정을 읊고 있다. 또한, 각 시의 결련(結聯)이 칠현의 충혼과 그 이름이 영원히 전해지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칠현사 제영」은 임진왜란 때 같은 가문의 문신과 무신이 각자 서로 처한 곳에서 왜적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고, 훗날 이들 모두가 벼슬이 추증되는 형식으로 그 공적이 조정에서 인정되었음을 보여준다. 임진왜란 때의 전란사를 재구성하는 데에도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