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3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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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新基- |
영어의미역 | Sangsingi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신기동 상신기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형분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신기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신기동은 본래 조선시대 양산의 읍내면 지역으로서 조선 숙종 때 마을 뒤에 여부사란 사찰이 있어, 여부사 명칭을 따라 여부라 칭한 때도 있었다. 마을이 확장·발전함에 따라 조선 말기에는 아래새터[下新基], 우새터[上新基], 신기라 불리기도 하였다. 신기마을의 위쪽에 있다고 하여 상신기마을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996년 3월 1일 양산군(梁山郡)이 양산시(梁山市)로 승격되어 양산읍이 3개동(中央, 三城, 江西)으로 분할되면서 삼성동(三城洞)이 탄생하게 되었다. 삼성동의 동명은 북정, 산막, 호계 등 3개동의 삼(三)자와 신기동의 뒷산에 위치한 양산의 대표적 산성인 신기산성(新基山城)의 성(城)자를 따서 4개동이 다 포함된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삼성동(三城洞)이라 이름하게 되었다고 한다. 상신기마을은 이때부터 삼성동에 속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신기 마을 지역에 사람들의 주거가 형성된 시기와 관련한 주민들의 구전 및 문헌적 자료는 현재 전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북정동 인근에 위치한 북정동고분군, 신기동 고분군 등의 유적과 유물을 고려해 볼 때 신라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사람들이 주거를 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신기마을은 본래 양산의 읍내면 지역으로서 조선 숙종 때 당시 마을 뒤에 여부사(余芙寺)란 사찰이 있어, 그 명칭을 따라 “여부”라 칭한 때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 신기라는 마을의 명칭은 조선말기에 인구의 유입 및 증가로 인하여 마을이 확장 발전됨에 따라 북정동 인근에 새롭게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새롭게 형성된 마을을 ‘우새터’, ‘아래새터’ 또는 ‘신기’라 불려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안마을 일부를 병합하여 신기동(新基洞)으로 불리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96년 3월 1일 양산시 승격과 동시에 삼성동(三城洞)의 관할이 되었다가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자연환경]
마을 뒤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있고, 마을 앞으로는 국도 35호선이 지나고 있다. 그리고 국도 35호선 앞쪽에는 양산천이 흐르고 있고, 남쪽으로는 명곡천이 흐르고 있다. 또한 마을 뒤쪽 경부고속도로를 위쪽으로는 성황산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마을은 동쪽에 위치한 대동, 동원, 해강 아파트 단지와 북쪽에 위치한 네오파트 아파트 단지, 그리고 서남쪽에 위치한 신기 주공아파트 단지 등으로 인해서 조망권이 제약을 받고 있다. 또한 인근 지역으로 대형 상가건물 및 공단이 속속 들어서고 있어서 앞으로도 조망권은 심한 제약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도 35호선을 타고 양산시청에서 언양방면으로 진행하다가 보면 공단입구 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직진하면 구 양산IC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다시 좌회전하면 마을이 나타난다.
[현황]
2008년 6월 현재 총 159가구에 311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북정지구 택지가 조성되어 발전하고 있다. 상신기마을 동쪽으로는 고속국도 1번이 지나가고 있으며, 양산IC가 있다. 상신기마을 서쪽으로는 양산천이 흐르고 있으며, 양산 신기리 지석묘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