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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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津橋 |
이칭/별칭 | 덕진 다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도로와 교량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 교변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변남주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와 영암읍 역리를 연결하는 교량.
[개설]
덕진교는 덕진면 덕진리와 영암읍 역리 사이에 있는 영암천을 건너는 다리로 국도 13호선에 위치한다.
지금의 덕진교가 있는 자리에서 서쪽으로 약 60m 지점에는 조선 시대에 건설된 덕진교가 있었다. 고려 시대 독나루가 있던 곳에 조선에 들어와 덕진교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덕진교의 서쪽에는 덕진포가 있었다. 덕진교 아래를 흐르는 덕진천[현 영암천]은 영암읍 학송 불티재에서 발원하여 덕진교를 지나 옛 갯고랑을 이루어 바다로 흘렀다.
조선 시기에 덕진교의 주 기능은 역로를 연결하는 것으로, 남쪽에 있는 영암의 영보역(永保驛)[현 영암읍 역리]과 북쪽 나주에 있는 신안역(新安驛)을 연결하였다.
[명칭 유래]
주막집을 운영하여 번 돈으로 돌다리를 놓아준 덕진의 설화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나 독나루[德津]에 건설된 다리라 하여 덕진교라 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제원]
덕진교는 총 길이 50.2m, 총폭 21.5m, 유효폭 20.5m, 높이 8m, 경간수 2m, 최대 경간장 25m의 PSC Ⅰ형 교로이며, 하부 구조는 T형 교각이다. 왕복 4차선 도로가 있으며, 2011년 12월 31일 현재 1일 평균 교통량은 1만 5677대이다.
[건립 경위]
조선 초기에 영보리에 있던 영보역을 역리 마을로 옮기면서, 역로를 연결하기 위하여 독나루에 덕진교가 건설되었다.
[변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영암읍지(靈巖邑誌)』에 의하면 “덕진교는 덕진포에 있다.”라고 했고, 덕진포는 “군의 북쪽 5리에 있으며 월출산에서 나와 바다로 들어간다.”라고 하였으므로 덕진교의 서쪽에 덕진포가 있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시에서 “덕진에는 물이 얕아도 다리가 아직 있다.”라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물이 얕아진 덕진포와 덕진교의 15세기 상황을 알 수 있다. 이로 보아 조선 초에 덕진천에 다리가 건설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덕진교는 역로를 연결하던 다리라, 처음에는 목교였다가 나중에는 조그만 석교였던 듯하다. 이는 내촌 마을 서동열의 집에 있는 비석의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다. “1812년에 나주 제도[지금 신안군] 사람 김준철과 최천복이라는 사람이 다리를 처음 놓았으며, 1843년에 덕진교 인근에 사는 최필용이 보수하였다(嘉慶十七年壬申 四月 金俊哲 崔天卜 羅州諸島 初建/道光二十三年(1843) 癸卯三月 靈巖德津橋居崔必龍重堅).” 1812년에 놓은 다리는 다음 해에 세운 덕진비에 의하면 대석교(大石橋)였다.
현대에 들어와 덕진교는 동쪽으로 약 60m 정도 이동하여 콘크리트 다리로 개축되었다.
[현황]
국도 13호선에 있는 현재의 덕진교는 옛 덕진교 자리에서 동쪽으로 약 60m 이전하여 1992년 12월에 준공된 것이다. 옛 덕진교는 일부 돌다리로 복원하여 놓았으나, 2009년 무렵 영암천 확장 공사를 하면서 소멸되어, 징검다리로 전환되었다.
옛 덕진교는 삼국 시대 신라에서 덕진이라는 여자의 도움으로 돌다리를 건설하였다는 설화가 전하며, 속칭 ‘덕진교비’는 덕진의 업을 기리기 위하여 군민들이 세운 것이다. 현재 덕진면에서는 매년 단오 무렵에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