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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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津橋碑 |
이칭/별칭 | 대석교 창주 덕진지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 내촌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변남주 |
원소재지 | 덕진교비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 1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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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비 |
관련 인물 | 덕진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62㎝[높이]|150㎝[너비]|20㎝[두께] |
관리자 | 영암군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리 덕진교에 있는, 1813년 덕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1813년(순조 13)에 마을 사람들이 덕진의 업을 기리기 위하여 덕진교 북쪽에 덕진교비(德津橋碑)를 건립하였다. 또한 덕진교비는 ‘대석교 창주 덕진지비(大石橋創主德津之碑)’로도 불린다.
[건립 경위]
덕진교에 대한 설화에 따르면, 덕진교 주변 마을에서 주막을 경영하던 ‘덕진’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강에 다리가 없어 많은 행인들이 불편해 하는 것을 보고 다리를 놓기 위하여 푼푼이 돈을 모았다. 하지만 덕진은 다리를 세우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뜨게 되었다. 영암 원님이 부임한 첫날 밤 꿈에 소복한 덕진 여인이 나타나 “평생 모은 돈 300냥을 항아리에 넣어 집 모처에 묻어 놓았으니 그 돈으로 다리를 놓아 달라.”고 청하였다. 이튿날 그곳에서 돈을 찾은 원님은 천 자 길이의 돌다리를 세우고 그녀의 이름을 따서 ‘덕진교’라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덕진교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 건설된 것으로 확인되고, 그 이후에 영암천에 놓여 있었다. 사실 덕진교는 조선 시대 때 역로(驛路)를 잇기 위하여 관에서 건설한 교량이다. 2013년 현재 옛 덕진 석교는 소멸되었으며, 콘크리트로 건설된 다리가 대신하고 있다.
[위치]
덕진교비는 영암군 덕진리 교변 마을의 남쪽 영암천가에 있다.
[형태]
비석의 크기는 62×150×20㎝이다.
[금석문]
비의 전면에 ‘대석교 창주 덕진지비(大石橋創主德津之碑)’라 기록되어 있다.
[현황]
비는 맞배 기와집 형태의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덕진교가 처음 건립된 때는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인 것으로 확인된다. 덕진 설화에서는 신라 때 건립되었고 하나, 내용으로도 현실성이 부족하여 신뢰하기 어렵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덕진 설화에 근거하여 덕진교비를 세웠다. 덕진교비는 조선 후기 영암 덕진리 주민들의 생활상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