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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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津浦 |
이칭/별칭 | 독나루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변남주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덕진면 사이 바다에 있었던 포구.
[개설]
덕진포는 조선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에 있었던 포구로, 덕진교의 서쪽 바다에 있었다. 조선 시대 영암군 읍치와 가장 가까운 포구로 바다로 통하는 문[海門] 역할을 하였다. 근대 시기 덕진교 서쪽에는 모래사장이 발달하여 단오 축제를 열기도 하였지만, 포구는 퇴적으로 인하여 수심이 깊지 않아 큰 배는 다닐 수가 없었다.
[명칭 유래]
조선 시대에 들어와 영암군의 방언 ‘독나루개’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진포(德津浦)로 불리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독나루개’라고도 칭하는 덕진리 덕진포는 고려 시대에는 무안군에,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에 있었다. 『고려사(高麗史)』 조운조(漕運條)에 의하면, 고려 시기의 덕진포는 전라남도 무안군의 덕포(德浦)에 있었다. “덕포를 이전에는 덕진포(德津浦)라고 하였는데 무안군에 있다.”라는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들어와 영암군의 독나루개가 덕진포로, 무안의 덕진포는 덕포로 개명되었다.
덕진포는 일제 강점기의 간척에 이어 1980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면서 바닷물의 유입이 완전히 차단되어 포구 기능도 상실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 서쪽 바다에 있었다.
[관련 기록]
“덕진포는 군의 북쪽 5리에 있다[德津浦在邑北邊五里].”[『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덕진포는 읍의 북쪽 5리에 있다[德津浦在邑北邊五里].”[『영암읍지(靈巖邑誌)』 산천조]
“덕진교는 읍의 북쪽 5리에 있다[德津橋在邑北邊五里].”[『영암읍지(靈巖邑誌)』 교량조]
“해문은 북쪽 덕진강[현 영암천] 5리에 있다[海門北至德津江五里].”[『비변사 방안 지도(備邊司方案地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