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4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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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海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122번지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변남주 |
비정 지역 | 남해포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122번지[N34° 53′50.6″ E 126° 34′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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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포구 |
관련 문헌 | 『세종실록지리지』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 마을에 있었던 포구.
[개설]
남해포(南海浦)는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 마을에 있었다. 1980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면서 갯고랑이 삼포천으로 변하였는데, 이 삼포천의 하류에 남해포가 있다. 남해포의 동쪽 언덕에 남해신사(南海神祠)[남해당]가 있다. 남해신사는 조선 시기 국가에서 비용을 부담하여 바다의 안녕을 위하여 해신에게 제사[中祀]를 지내던 곳이었다.
[명칭 유래]
남해포는 동쪽 언덕에 있는 남해신사와 관련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변천]
남해포는 조선 시대에는 나주의 종남면에 속하였다가, 1906년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남해포는 남해신사와 관련된 포구였다. 남해신사는 봄가을에 나라에서 향축(香祝)을 내려서 제사지낸 곳이다.
발굴 조사 결과 조선 시대 유물과 중국 청나라의 도광 통보(道光通寶)[1821~1850] 1점, 그리고 일본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 때에 생산된 관영통보(寬永通寶)[1624~1643] 1점이 발견되어 남해포의 운영 시기와 국제 교류항의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남해포는 일제 강점기 후반에서 1970년대까지 영암과 목포를 오가는 여객선이 왕래하던 종점이었으나, 1980년 영산강 하굿둑 공사 이후 바닷물이 차단되고 호수화되었다. 이후 내수면 어업을 위한 포구로 이용되다가,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포구 기능이 모두 정지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122번지에 있었다.
[관련 기록]
“남해신사당은 나주의 남쪽에 있으며, 제례의 격은 평사(平祀)이며, 봄가을에 나라에서 향축(香祝)을 내려서 제사지낸다(南海神祠堂, 在州南, 祭例平祀, 春秋降香祝祭之).”[『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 전라도 나주목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