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7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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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巖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봉소리 철두 마을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희태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4년 - 봉암재에서 『진양 강씨 승지공파 종안』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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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32년경 - 봉암재 개축 |
현 소재지 | 봉암재 - 영암군 시종면 봉소리 철두 마을 |
성격 | 재실 |
양식 | 목조 와가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정면 4칸 |
측면 칸수 | 측면 1칸 |
소유자 | 진주 강씨 문중 |
관리자 | 진주 강씨 문중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봉소리 철두 마을에 있는 진주 강씨 문중의 재실.
[개설]
조선 시대에 영암 철두 마을로 입향 정착한 진주 강씨(晉州姜氏)강연(姜淵)[1554~?]의 재실이다. 강연(姜淵)은 문양공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5대손으로 자는 여정(汝靜)이며 1585년(선조 18) 식년시에 생원으로 입격하였다. 강연이 임진왜란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 철두 마을에 자리 잡은 것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봉암재(鳳巖齋)를 건립했다.
[위치]
영암군 시종면 봉소리 1구 철두 마을에 있다. 시종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3.5㎞ 떨어진 철두 마을 입구 산기슭에 있다.
[변천]
봉암재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04년 봉암재에서 종안(宗案)을 간행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봉암재 원운(鳳巖齋原韻)」 시판(詩板)의 ‘임신 삼월(壬申三月)’이라는 시기에 대한 언급을 보아 1932년 무렵에 개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1982년 삼문을 중건하였다.
[형태]
세 칸인 맞배지붕의 대문에서, 가운데 문의 지붕을 좌우보다 한 단 높게 세운 대문인 솟을삼문을 들어서면 봉암재가 있다. 경역은 앞부분과 측면 일부만 담장으로 둘러져 있고 뒤쪽에는 조경수를 심었다. 목조 기와 건물로 규모는 정면 4칸, 좌우 반퇴, 측면 2칸이다.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이며 좌우로 방을 두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함석으로 물받이를 설치하였다. 시멘트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원형 기둥을 세웠다.
[현황]
진주 강씨 문중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으며 관리 상태는 양호하다. 진주 강씨 봉암종회 사무실로도 사용하고 있다. 재실의 뒤에는 강연의 묘역이 있다. 봉암재는 출판 기능도 겸하였는데, 1904년에 『진양 강씨 승지공파 종안(晉陽姜氏承旨公派宗案)』을 간행하였다. 봉암재에는 기둥에 시문을 새긴 주련이 걸려 있고 안에는「봉암재 원운」시판이 있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때 영암으로 입향한 진주 강씨 강연의 재실로 조선 시대의 향촌사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