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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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朗州崔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
집필자 | 박선미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600년 - 낭주 최씨 입향조 최진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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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673년 - 낭주 최씨 입향조 최진하 사망 |
본관 | 낭주 최씨 본관 - 낭주[현 전라남도 영암군] |
입향지 | 낭주 최씨 입향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
세거|집성지 | 낭주 최씨 집성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
세거|집성지 | 낭주 최씨 집성지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소리 |
세거|집성지 | 낭주 최씨 집성지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연소리 |
성씨 시조 | 최흔 |
입향 시조 | 최진하 |
[정의]
최흔을 시조로 하고 최진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개설]
영암군에 기반을 둔 낭주 최씨(朗州 崔氏)는 신라 말 인물인 최흔(崔昕)을 시조로 하였다. 최흔의 아들 최지몽(崔知夢)[907~987]은 구림[현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서 태어나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서 고려 개국에 힘썼다. 최지몽이 죽은 뒤 신라계가 고려 왕실의 주도권을 가진 후부터 동족 기반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 말에 전객령(典客令)을 역임한 최희소(崔希沼)를 중시조로 세계를 이어서 지금에 이른다.
[연원]
낭주는 영암군의 옛 이름으로, 시조 최흔 이후 낭주 최씨가 본관으로 삼은 세거지이다. 최흔의 선계는 문헌이 없어져서 확인할 수 없다. 신라 효공왕·신덕왕 때에 원보상(元輔相)을 지낸 최흔이 집안의 기틀을 잡아 크게 번창한 이후, 후손들이 낭주에 세거하면서 본관으로 삼았다.
[입향 경위]
낭주 최씨는 영암군의 토착 성씨이지만 최지몽의 출생지인 구림 마을에 다시 입향하여 집성촌을 이룬 사람은 중시조 최희소의 13세손인 최진하(崔鎭河)[1600~1673]이다.
[현황]
영암군의 낭주 최씨 집성촌은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와 영암군 군서면 양지촌·항동리, 영암군 학산면 용소리, 영암군 시종면 연소리 등이다.
[관련 유적]
영암 지역 낭주 최씨 관련 유적으로는 서구림리 국사암 옆에 최지몽·최안우(崔安雨)[1361~?]·최진하·최몽암(崔夢嵒)[1718~1862]을 배향하는 국암사(國巖祠)가 있으며, 강당과 재실로 사용하는 문중의 문각(門閣)인 덕성당(德星堂), 그리고 1977년에 세운 ‘고려 태사 민휴공 최 선생 유적비(高麗太師敏休公崔先生遺蹟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