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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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松里金海金氏集姓村 |
이칭/별칭 | 화소(華所)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
집필자 | 박선미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에 있는 김해 김씨 집성촌.
[개설]
조선 중기에 입향조 김한성(金漢城)이 강진에서 영암 서호 구음평[현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으로 이주하였고, 김한성의 아들인 김사종(金嗣宗)이 풍수지리에 의해서 산세가 좋고 기름진 땅이 있는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화소 마을에 터를 잡아, 김해 김씨의 집성 마을이 이루어졌다.
[명칭 유래]
화소(華所)는 늙은 학이 집을 찾아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인 ‘노학귀소(老鶴歸所)’의 지형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에 마을 이름을 학소(鶴所)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부르기 쉽게 화소로 명칭이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화소’는 한자로 華巢, 和所, 化所, 花所 등 다양하게 표기되었다.
[형성 및 변천]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화소 마을은 김해 김씨 영암 입향조 김한성의 아들 김사종이 서호 구음평의 자리가 문중 번영 및 자손이 거주하기가 부적합하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풍수지리가인 이기옥과 함께 거주지를 물색하던 중에 용두산 아래의 땅을 발견해서 마을을 이루었다. 김사종의 아들 김극조(金克祚)가 화소에서 1.5㎞ 떨어진 서호면 몽해리에 터를 잡고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1577~1635]을 낳으면서 정착했고, 나머지 김사종의 후손들은 화소 마을에서 정착하여 집성 마을을 이룩하였다. 화소 옆 동남쪽에는 밀양 김씨가 영암에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지만 노동과 송정 등으로 이주하여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자연 환경]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화소 마을은 용두산[71m] 자락 아래에 평지가 있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마을 앞에는 높이 3m, 넓이 33㎡[10평] 정도의 알과 비슷한 바위 7개가 150m 간격으로 있었다. 하지만 1973년 경지 정리를 하면서 없어지고 지금은 한 개만 남아 있다.
[현황]
서호면 화송리 화소 마을은 면소재지인 서호면 장천리에서 약 3㎞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현재도 마을의 대다수를 이루는 성씨는 김해 김씨이고, 2013년 현재 약 5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김완, 김여옥(金汝沃), 김여준(金汝浚) 등을 배향하는 김해 김씨 문중 사우인 구고사(九皐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