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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937
한자 金璇
이칭/별칭 이헌(而獻),시서 거사(市西居士),지서자(之西子)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송정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탁현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8년연표보기 - 김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05년 - 김선 진사시에 합격
활동 시기/일시 1606년 - 김선 사마시에 합격
몰년 시기/일시 1642년연표보기 - 김선 사망
성격 문관
성별
본관 광산

[정의]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이헌(而獻), 호는 시서 거사(市西居士) 또는 지서자(之西子)이다. 아버지는 상호군(上護軍) 김부성(金富成)이며, 아들은 김시길(金時길[日+吉]), 김시간(金時暕)이다.

[활동 사항]

김선(金璇)[1568~1642]은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여 정계에 나아갔으나, 광해군의 정치에 실망하여 낙향한 뒤 지금의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강정 마을에 오영정(五榮亭)이라는 초가집을 짓고 은둔 생활을 하였다.

김선은 평소 이이첨(李爾瞻)[1560~1623]의 실정을 비판하며 영창 대군(永昌大君)[1606~1614]을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1615년(광해군 7)에 강진 출신의 이정언(李廷彦)과 윤유겸(尹惟謙)이 김선의 처벌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이로 인해 인목 대비(仁穆大妃)[1584~1632]의 폐모론(廢母論)이 나오게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참봉(參奉)과 찰방(察訪)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을 사양하고 영암에 계속 기거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1587~1624]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선은 『초당한람(草堂閑覽)』을 저술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7.25 자녀 성명 오류 수정 아들은 김시호(金時晧)이다. -> 아들은 김시길(金時길[日+吉]), 김시간(金時暕)이다.
이용자 의견
김** 아들은 김시호가 아니라 장남은 시길(時日+吉),차남은 시간(時暕)입니다
  • 답변
  • 디지털영암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의견을 검토하여 해당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20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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