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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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運 |
이칭/별칭 | 창진(昌辰),충장(忠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탁현진 |
[정의]
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무신.
[개설]
정운(鄭運)[1543~1592]은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고을을 다스리며 “정충보국(貞忠報國)”이라는 네 글자를 칼에 새겨 스스로 맹세하였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서 많은 공을 세우다 부산포 해전에서 총탄을 맞고 전사하였다.
[가계]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창진(昌辰)이다. 아버지는 기자전 참봉을 지낸 정응정(鄭應禎)이다.
[활동 사항]
정운은 1570년(선조 3)에 무과에 급제하여 거산도 찰방(居山道察訪)을 거쳐 웅천 현감(熊川縣監)을 지냈다. 정의롭고 강직한 성품과 타협을 모르는 성정을 지닌 탓으로 조정의 미움을 받아 몇 해 동안 벼슬을 지내지 못하다가 1591년(선조 24)에 녹도 만호에 임명되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李舜臣)의 선봉장이 되어 옥포와 당포, 그리고 한산도 등의 여러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1592년 9월 부산포 해전에서 우부장에 임명되어 군관을 이끌고 싸우다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604년(선조 37)에는 병조 참판에, 1796년(정조 20)엔 병조 판서 겸 의금부 훈련원사에 추증되어 영암[현 전라남도 해남군]의 충절사(忠節祠)와 흥양[현 전라남도 고흥군]의 쌍충사(雙忠祠)에 이대원(李大源)과 함께 배향되었다.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정운공 순의비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어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에 세워져 있다.
대한민국 해군은 정운의 용맹을 기려 여섯 번째 잠수함을 ‘정운함(鄭運艦)’이라 명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