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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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士勳 |
이칭/별칭 | 문사원(文士元),문순조(文順兆)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윤미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문사훈(文士勳)[1903~1979]은 1930년대 초반 영암에서 비밀 결사인 청년회를 조직하여 독립 정신을 고취하였고, 1932년 일제에 항거하는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문사훈의 본적은 전라남도 영암군 장암(場岩)이며, 독립운동 당시 장암에 머물고 있었다. 생몰년은 독립 유공자 포상 자료에 따르면 1912년 4월 17일~1979년 5월 23일이다. 그러나 출생년도가 「포상자 공적 조서」에는 1903년 12월 24일로 기록되어 있어 약간 차이가 있다.
문사훈은 1931년 9월 영암군 영암면 교동리(校洞里) 최판옥(崔判玉)의 집에서 김판권(金判權)·문성선(文性善) 등과 함께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비밀 결사인 청년회(靑年會)를 조직하였고, 1932년 2월 24일경부터 영암군 덕진면(德津面) 청년 회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청년회원들의 모임을 갖고 일제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방안을 논의하였다. 문사훈을 비롯한 청년회원들은 1932년 6월 4일에 산유회(山遊會) 명목으로 회원 70여 명이 집합하여 일제에 항거하는 시위운동을 전개키로 결의한 뒤, 이를 실천하기 위해 큰북과 나팔을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며 일인 지주와 친일 지주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문사훈은 1933년 9월 29일 광주 지방 법원 목포 지청에서 폭력 행위 및 업무 방해죄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문사훈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