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075 |
---|---|
한자 | 李德三 |
이칭/별칭 | 김덕중(金德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윤미 |
[정의]
개항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의병장.
[개설]
이덕삼(李德三)은 영암 출신으로, 본명은 김덕중(金德仲)이다, 1908년부터 1909년 사이 전라남도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활동 사항]
이덕삼은 호남 지역의 의병으로 활동하면서 1908년 9월 11일부터 1909년 3월 1일까지 일본인 26명을 피살하고, 36호의 가옥을 불태웠다.
1909년 3월에서 7월 사이에 각지에서 의병군을 모집하여 규모가 큰 경우에는 200~300명에 이르렀는데, 이덕삼이 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황준성(黃俊聖)과 강성택(姜成宅)이 부장, 황두일(黃斗一)이 중군장(中軍將), 추공엽(秋珙燁)이 전군장을 맡았다. 이덕삼 의병 부대는 주로 영암·해남·완도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일본 거류민들을 습격하여 일본인을 축출하는 데 공을 세웠다.
1908년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 항쟁의 열기가 잦아들기 시작했지만 호남 지방은 의병 활동이 끝까지 활발하게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이덕삼은 의병 200명을 거느리고 주로 해남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