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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260
한자 勞動運動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기훈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노동자 계급이 자신들의 생활 조건을 유지·향상시키기 위해 행하는 조직적인 운동.

[개설]

근대적인 노동자 계급은 형성의 초기 단계부터 생존권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 운동을 발전시켜 왔다. 1898년 개항 직후 목포 부두 노동자들의 파업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1920년대 이후 공장 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노동 운동이 시작되었다. 1924년 결성된 조선 노농 총동맹은 노동자 단체의 조직, 노동자 계급 의식의 고취, 8시간 노동과 최저 임금제 실시를 내세웠다. 1925년에는 농민 동맹과 분리되어, 조선 노동 총동맹이 성립되었다.

이런 조류는 영암 지방에도 영향을 미쳐 1925년 3월 영암 노동회가 결성되었다. 최판옥, 한동석 등 영암 청년회의 중심인물들이 결성한 영암 노동회는 건설 등에 종사하는 자유노동자들로 구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1925년에 영암 금융 조합 신축 공사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영암 지역의 사회 운동은 주로 농민 운동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다 1996년 대불 국가 산업 단지[영암 테크노폴리스]가 완공되고 삼호 중공업[당시 한라 삼호 중공업]이 들어서면서 대규모 노동조합 운동이 시작되었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7·8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특히 금속, 조선, 자동차 등 대규모 공장의 노동조합이 조직되었다. 1990년에는 전국 노동조합 협의회가 결성되었으며, 1995년 민주 노동조합 총연맹[민주 노총]이 창립되어 전국적이며 조직적인 노동 운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한라 삼호 중공업은 1997년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벌였고 1999년 구조 조정에 반대하는 장기 파업 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현황]

1997년 이후 노동 운동이 침체하면서 영암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9년 3월말 현재 대불 국가 산업 단지[영암 테크노폴리스]의 노동조합 조직율은 1.2%에 불과하며 대불 외국인 산업 단지의 노동조합 조직율도 7.0%이고, 노동자 중 노조원의 비중은 대불 국가 산업 단지[영암 테크노폴리스]는 4.4%, 대불 외국인 산업 단지는 6.2%에 불과하다. 최대 사업장인 삼호 중공업 노동조합이 민주 노총 소속으로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다. 그러나 삼호 중공업의 사내 하청 비율이 2013년 현재 73.6%에 달하는 등 급격히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사내 하청 업체 노동자 등 많은 노동자들이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2009년 이후 조선업의 불황과 복잡한 하도급 구조에 따른 임금 체불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목포와 인접한 영암에는 일찍부터 노동 운동이 발전해 왔으며 최근에도 현대 삼호 중공업 노동조합 등이 한국의 중요한 노동조합의 일원으로 활발한 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비정규직, 사내 하청,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 등의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2012년 대불 국가 산업단지[영암 테크노폴리스] 내 가스 폭발 사고로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은 최근 영암 지역 노동의 현실과 노동 운동의 과제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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