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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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月里粉靑沙器窯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상사 마을 산34 외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성욱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3년 2월 - 상월리 분청사기 가마터, 민족 문화유산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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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상월리 분청사기 가마터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상사 마을 산34 외 |
출토 유물 소장처 | 민족 문화유산 연구원 - 전라남도 목포시 옥암동 960-4 |
성격 | 분청사기 가마터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상사 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가마터.
[개설]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는 퇴화된 상감 청자가 전국에서 생산되었는데 이것이 점차 변모하여 실용적 형태로 바뀌고, 무늬가 그릇 전체로 확대되며, 유약의 투명도가 높아졌다. 이렇게 변모한 상감 청자를 분청사기라고 한다. 분청사기는 여말 선초의 사대부들이 추구하였던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과 맞아 떨어져 대량 생산되어 실용화되었다. 또한 유기(鍮器)와 목기(木器), 은기(銀器)는 재료가 귀하거나 만들기 힘든 데 비하여 분청사기는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흙으로 만들 수 있어 경제적이었다. 따라서 분청사기는 청자의 쇠퇴가 아니라 청자가 대중화되어 대량 생산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변천]
상월리(上月里) 분청사기(粉靑沙器) 가마터는 갑발(匣鉢)이 확인되고 있어 조선 전기에 고급의 분청사기를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영암 지역에 자기소와 도기소가 5곳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까지 확인된 분청사기 가마터는 상월리 분청사기 가마터뿐이다.
[위치]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상사 마을 북쪽 100m 정도 떨어진 박대영 소유의 산기슭 농로 주변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와 결과]
2013년 1월과 2월에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영암군의 문화 유적』과 『영암군지』, 『문화 유적 분포 지도』 등의 문헌에 간략하게 고려청자 가마터로 정리되어 있다.
[현황]
상월리 분청사기 가마터는 농로를 만들면서 훼손되어 가마 벽면이 일부 노출되어 있다. 가마터 주변에서 분청사기 조각과 가마 벽체 조각, 요도구인 갑발과 도지미[도자기를 구울 때 사용되는 받침] 등이 확인되는데 분청사기는 두 가지 유형이 확인되고 있다. 태토 비짐을 받쳐 인화(印花)와 조화 박지(彫花剝地) 기법으로 제작된 유형과 가는 규석 가루를 받쳐 귀얄 기법[태토에다 귀얄로 흰 흙을 바르고 그 자국을 그대로 남겨서 장식하는 기법]으로 생산한 가마로 구분되어 2기 이상의 가마가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