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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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育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집필자 | 강성구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교육 기관, 시설 및 관련 시책.
[개설]
교육은 인간사회가 본디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기능이다. 사회가 있는 곳에는 교육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원시 시대에는 교육 시설이 없었으며, 다만 일상생활 가운데서 생활에 필요한 범위의 지식이나 기술이 전수되고 생활 방식으로 전달되었다. 다만 원시 시대에 제사장은 일반인이 가지고 있지 못한 고도의 지식이나 제사의 방법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조직적인 교육을 행하였다.
현대 사회에서는 학교가 특히 큰 힘을 가지고 청소년을 교육하고 있다. 그래서 교육이란 교사가 학교라고 하는 기관에서 계획적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것으로 보통 인식된다. 그러나 학교가 설립된 것은 인간 생활의 역사에서 보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며, 더욱이 모든 국민이 학교 교육을 받게 된 것은 불과 최근 100년 사이의 일이다. 학교가 없던 시대, 그리고 학교가 있어도 소수의 특수층만이 교육 기관에서 교육받던 시대에 대부분의 청소년은 학교 밖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사회생활에 따라다니는 기능이기 때문에 사회생활이 진보하면서 변해 왔으며, 어느 시대에도 같은 모양의 교육이 행해진 적은 없다.
18세기에 들어서자 유럽의 학교는 국가의 제도로서 정비되었다. 19세에는 여러 구가에서 학교 체계가 정비되기 시작하여 공교육 제도가 나타나게 되었다. 초등, 중등, 고등으로 나누어진 학교 체계가 나타났으나, 일반 민중은 초등학교 정도의 학교만 이용할 수 있었으며 지도층의 자제는 고등 교육 기관에 진학하여 높은 교양을 쌓고 사회의 상층에 입신할 자격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문자를 사용하였고, 삼국 시대부터는 형식을 갖춘 학교가 나타나서 귀족 자제의 교육과 관리를 양성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신라의 국학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교육 기관은 고려 시대에 국자감 및 학당, 향교, 조선 시대에는 성균관, 사부 학당, 향교 등으로 발전하였다. 교육은 국가의 이념이나 정치형태 등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를 취하며 발전해 왔으며, 오늘날 세계 각국은 그들 나름의 명분과 철학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표방한 고유 방식을 전개하고 있다.
[고대 사회 영암 교육]
영암군의 교육은 조선 시대 이전부터 서술해야 하나 중앙 교육에 대한 기록도 희귀한데, 변방인 서남해안에 위치한 관계로 왜구의 침입의 기록은 있으나 교육에 대한 기록은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일본 아소카(飛鳥) 문화의 창시자인 왕인 박사 등이 있었음을 볼 때 과거 영암이 해외 문화 교류의 관문이었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영암 지방은 삼국 이후에는 통일 신라, 고려, 조선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으니 교육도 이 영역의 범주 내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전반적 내용을 개괄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영암 지방의 교육을 유추해 보고자 한다.
1. 백제
백제의 학교 설치는 기록상으로는 나타나지 않으나 그 찬란했던 문화 수준으로 보아 어떤 형태든 교육 기관이 존재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사료에도 학교 설치를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다. 백제 근초고왕 때 왕인 박사가 이 지역에서 출생하였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왕인이 백제인이며 월출산 또는 월내산 지역의 사람이라는 기록되어 있다. 일본 응신 천황 16년, 백제 왕인이 일본에 들어와 태자의 스승이 되어 전적(典籍)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왕인 박사가 영암 구림에서 태어났으며 당시 『논어』 10권, 『천자문』 1권, 도공 등을 데리고 문화의 불모지인 일본에 건너가 일본 문화의 시조의 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이로 보아 구림을 중심으로 한 영암 일대는 높은 문화가 형성되었고 왕인 박사와 같은 신유(臣儒)가 다수 배출되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2. 통일 신라
신라의 교육은 통일 전의 교육과 통일 신라 시대의 교육으로 구분하여 볼 때 신라의 학교 교육은 통일 신라 초 설치된 국학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신문왕 때인 682년에 국학이라는 학교 교육 제도를 설립하여 유교 교화 및 한문학을 장려하였다. 신라 말의 구림에서 명승 도선 국사를 배출한 것은 영암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3. 조선 시대
영암 향교는 1420년(세종 2)에 영보역(永保驛)이 있던 영암읍 역리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모셔 배향하고 영암 지역 사람들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조정과 유림에서 창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뒤 현재의 위치에 중건하였으며, 1918년에는 향교내에 보통학교가 설립되어 운영되다가 화재로 소실되었다.
조선조 중종 때 향약으로 향촌의 화민성속(化民成俗)을 도모할 것을 조정에서 논의하고 권장할 때 이곳 영암에도 1665년(명종 20) 구림 대동계가 조직되어 존속하고 있다. 그 무렵 영암읍 춘양리에 화수정동약(花樹亭洞約), 덕진면 영보리의 영보동약, 학산면 은곡리의 은곡대동계 등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존속하지 못하고 일부 고문서만 보존되어 있을 뿐이다.
[근대 영암 교육]
영암군에서 최초 근대 학교 설립은 통감부(統監府)에서 1906년에 이른바 보통학교령이라고 불리는 ‘칙령 제44호’를 공포하여 종래까지 초등 교육 기관을 담당했던 소학교의 명칭을 보통학교로 고치는 한편 소학교의 심상(尋常), 고등 두 과를 폐지, 통합시켰으며 수업 연한도 5년 내지 6년이었던 것을 4년으로 단축시켰던 것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영암군의 영암 공립 보통학교도 수업 연한 4년의 보통 학교로서 설립되었다. 일제가 이와 같이 각급 학교의 수업 연한을 단축시킨 것은 통감 통치 시기에 일제가 취했던 두 가지 교육 방침 중의 하나인 이른바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다. 1908년 4월 1일 영암 공립 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아서 1908년 6월 11일 영암 공립 보통학교를 개교할 때에는 보수과 2년 제외 보통학교 4년제였으며, 1938년 4월 1일 영서 심상 소학교로 교명을 개칭했다.
[현대 영암 교육]
1. 광복 후
영암군 내의 초등학교들도 광복을 맞아 미군정 당국의 지시에 따라 1945년 9월 24일 일제히 문을 열었다. 바로 그날로부터 한국인 교장을 맞고, 한국인 교사들에 의해 잃어버렸던 한국어로 수업을 시작하는 등 민족 해방의 기쁨을 맛보았다. 1946년 9월에 학교 아동 전원 수용 조치에 따라 각급 학교는 극심한 교실난을 겪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지역 주민의 교육 열의에 따라 인문계 중학교의 창설에 힘을 기울였으니, 이때 개교를 한 학교는 영암 남 초등학교, 금정 북 초등학교, 신북 서 초등학교, 독천 초등학교이며 중학교로는 유일하게 공립 영암 중학교가 개교했다.
2. 제1 공화국
6·25 전쟁 당시 영암군 내의 학교 피해 상황으로는 1950년 9월부터 11월 사이에 영보 초등학교를 제외하고 영암 초등학교, 덕진 초등학교, 신북 초등학교, 금정 초등학교, 구림 초등학교, 도포 초등학교, 시종 초등학교, 학산 초등학교, 장천 초등학교, 독천 초등학교, 서창 초등학교, 삼호 중앙 초등학교, 용당 초등학교[삼호 서 초등학교], 미암 초등학교, 신북 서 초등학교, 시종 북 초등학교[종남 초등학교], 군서 북 초등학교, 서호 북 초등학교 등 19개교와 영암 중학교가 전소되었다. 1953년 8월 정부의 각급 기관이 서울로 환도함에 따라 6·25 전쟁으로 인하여 약 60% 이상이 파괴된 영암군 학교 시설을 재건하기 위한 군민적 의지가 발로되고 자유 우방 국가의 경제 원조로 시설 복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원상 복구가 된 학교로는 1951년 10월 6일 영암 농업 고등학교가 6학급 300명으로 설립되었고, 1951년 사립 군서 고등 공민학교가 개교하였고[구림 중학교로 1964년 승격], 1952년 10월 21일 군서 남 초등학교가 개교하였고, 1953년 4월 15일 영암 낭주 중학교가 개교하였고, 1954년 5월 19일 신북 중학교가 개교하였다.
1952년 6월 초에 전국적 교육 자치제 실시로 1952년 6월 4일에 영암군에서도 영암군 교육구를 교육청으로 개칭하고, 제1회 교육 위원회를 개최하여 유인홍을 초대 교육장으로 선출하여 실질적인 교육 자치제가 실시되었다. 사무실을 군청에 두었다가 1961년 5월 20일 청사 32평을 신축하여서 영암군 영암읍 역리로 이전하였다. 영암군 영암읍 월출로 84번지[망호리 753]에 1998년 11월 23일 연면적 2,039㎡ 지하 1층 지상 3층의 신축 청사로 이전하여 현재 전라남도 영암 교육 지원청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3. 군사 정부 시기
제2 공화국을 붕괴시키고 들어선 군사 정부의 교육 정책은 교육 자치제의 폐지와 향토 학교의 설치로 집약될 수 있다. 1962년 1월 6일자로 교육법을 개정하여 지방 행정 일원화라는 원칙에 따라 교육 자치 제도를 폐지하고 일반 행정에 통합시켜 초등 교육 행정은 시장·군수 산하의 교육과로, 중고등학교의 행정은 도지사 산하의 교육국으로 예속시킴으로써 교육의 자주성은 그 빛을 잃었다. 이에 따라 시 교육청과 군 교육청이 폐지되었고 문교 사회국 대신 들어선 교육국 산하에 교육 연구소가 설치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영암군의 교육청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1955년 제정되었던 교육 과정을 1963년 2월 13일 새로 개편하여 개정 공포하였는데 내용면에서 자주성, 생산성, 유용성의 강조가 두드러졌다. 1961년 제2 공화국 수립부터 제3 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수립된 1963년 12월까지의 영암군 교육의 변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1960년 3월 2일에 영암 초등학교 개신 분교장이 설치되었고, 1961년 12월 7일에 시종 초등학교에 신학 분교장이 설치되었으며, 1961년 11월 27일에 도포 초등학교 수산 분교장이 설치되었다. 1963년에는 교육법 개정에 따른 교육 자치제의 부활로 균일 반 행정에서 독립 교육청으로 재발족되었다.
4. 제3 공화국
전라남도 교육 위원회는 1964년 1월 1일에 구성되었고 초대 전라남도 교육감으로 박형열이 선출되었다. 이에 따라 영암군도 교육구청이 설치되고 변재영 교육장이 임명되어 교육 및 학예 업무를 담당케 되었다, 1968년을 계기로 하여 교육 내용과 방침이 국민 교육 헌장의 이념을 실천하는 것으로 되었다. 또한 반공 안보 교육이 강화되어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반공 소년, 소녀대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는 교련 교육이 실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전라남도가 추진해 왔던 향토 학교 운동은 1970년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에 흡수되어 버렸다. 제3 공화국 기간 중 1968년은 교육 혁명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각종의 혁신적인 조치들이 취해졌다. 국민 교육 헌장의 선포를 비롯하여 중학교 무시험 진학, 대입 예비고사, 통신 교육제 등이 연달아 선포되었고, 이를 매스컴에서 ‘교육 폭탄’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한편 교육부는 1970년 신학기부터 ‘대통령의 학교 환경 정상화 지침’ 시달에 발맞추어 종전의 기성회를 폐지하고 학교 육성회 제도를 발족시킴으로써 당시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 온 잡부금 징수를 일소하고 새로운 교육 풍토 조성에 힘썼다. 또한 1970년대 초부터는 새마을 운동의 추진과 발맞추어 새마을 교육이 강조되어 주체성 교육, 체육 교육 등과 같이 정책적 뒷받침 아래 줄기차게 추진되었다. 제3 공화국 출범 이후 1972년 10월 유신 시대 전까지 시기의 교육 상황을 보면 교육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증가한 교육 인구를 수용하기 위하여 학교의 건립 등에 막대한 재원이 요구되었다.
5. 제4 공화국
제4 공화국은 교육이 또 한 번 자치권을 잃은 수난의 시기였다, 문교부는 ‘한국적 민주주의 정립’을 내세우며, 유신 과업의 정신적 기반인 국민 교육 헌장의 이념을 구현하고 국민 정신 교육과 국가 안보 교육 및 새마을 교육을 강조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국적 있는 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었다. 따라서 각 시도 교육 위원회는 독자적인 교육 시책의 정립 수행이 아니라, 더욱 통제된 행정 체계 아래 주어진 정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그나마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으며 영암군의 교육도 그러한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1973년 3월 14일 ‘전라남도 교육 위원회 행정 권한 위임에 관한 규칙’에 따라 종래 도 교육감이 관장해 왔던 여러 가지 행정 권한이 도내 하부 교육청의 교육장에게 위임됨으로써 행정 효율의 향상과 사무의 간소화를 피할 수는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 영암군에서는 1973년 3월 9일 금정 중학교가 개교하였고, 1974년 1월 5일에는 영암 서호 중학교가 9학급 설립 인가를 받아 1974년 3월 5일 개교하였으며, 1978년 12월 29일에는 영암 미암 중학교가 9학급 설립 인가를 받아 1979년 3월 1일에 개교하였다. 고등학교로는 낭주 고등학교가 1976년 7월 6일에 6학급 설립 인가를 받아 1977년 3월 1일에 개교하였고, 신북 공업 고등학교가 1974년 12월 27일에 6학급 설립 인가를 받았고 1977년 3월 1일에 12학급 인가를 받았다. 여자고등학교로는 유일하게 영암 여자고등학교가 1974년 12월 27일에 5학급 설립 인가를 받아 1975년 3월 5일에 개교하였다. 초등학교로는 행월 초등학교가 1971년 3월 1일에 신북 초등학교 행월 분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서 1971년 9월 2일에 신북 초등학교 행월 분교로 개교를 한 뒤 1973년 3월 1일에 행월 초등학교로 승격하였다. 분교장으로는 원호 분교장이 1973년 3월 1일에 도포 초등학교 원호 분교장으로 개교를 하였다.
6. 제 5공화국 이후
1979년 10월 26일 비상사건으로 제4공화국은 무너지고 통일 주체 국민 회의를 통해서 최규하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난 이것은 일종의 과도기적 정부였고 결국은 1980년 8월에 전두환을 수반으로 제5 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한편 1980년부터 1987년 기간 동안 영암군은 1980년대로 고비로 늘어만 가던 학생이 매년 격감하였다. 각급 학교의 학교, 학급, 학생 수 변동 상황을 보면 1974년도에는 초등학교는 학교 수가 35개교[분교 4개교 포함], 학급 수 509학급, 학생 수 14,158명이고 중학교는 8개교 94학급에 학생 수 5,952명이고 고등학교는 2개교에 14학급에 604명이었다. 이에 비해 1994년도에는 초등학교 28개교[분교 7개교], 학급 수 228학급, 학생 수 5,775명이고 중학교는 11개교에 91학급 3,462명이고, 고등학교는 5개교 50학급에 학생 수는 2,042명이었다. 또한, 대학교는 사립대인 동아 전문 대학[현 동아 인재 대학], 대불 공과 대학[현 세한 대학]이 설립되었으며, 병설 유치원이 덕진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1981년 1월 24일] 외 27개원이 설립되었고, 유아원도 영암 유아원[1981년 7월 10일] 외 5개원이나 설립돼 유치원이 급증됐음을 알 수 있다. 2012년 3월 현재 학교 현황은 유치원은 19개 학교[공립 16개교, 사립 3개교], 학급 수 33학급[공립 21개, 사립 12개], 학생 수 511명[공립 284명, 사립 227명]이며, 초등학교는 18개 공립 학교[본교 16개교, 분교장 2개교], 학급 수 178(10)학급[본교 175개, 분교장 3개], 학생 수 3,197명[특수 38명, 본교 3,189명, 분교장 8명]이 있다. 중학교는 12개 학교[공립 10개교, 사립2개교], 학급 수 76학급[특수 4학급][공립 64개(4개), 사립 12개], 1,842명[특수 14명][공립 1,488명(4명), 사립 354명]이 있다. 고등학교는 6개 학교[공립 5개교, 사립 1개교], 학급 수 67학급[특수 3학급][공립 52학급(3학급), 사립 15학급]이 있고, 학생 수 1,609명[특수 18명][공립 1,175명(18명), 사립 434명]이 있다. 특수 학교[은광 학교, 소림 학교] 사립 2개교에 25학급[특수 25학급]이 있으며, 133명[특수 133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농촌 인구가 노령화되고 젊은 청년들은 대도시로 진출하여 영암군 인구가 감소되고 있어 학생 수도 줄고 있다.
농촌 인구의 이농 현상으로 농촌 학교와 학생이 과소화됨에 따라 1992년 향토 명문 학교를 만들기 위해 장학 기금 조성 10억 원 목표로 시작하여 2008년 재단 법인 영암군민 장학회를 설립하여 목표액 100억 원으로 출발하여 2012년 현재까지 671건에 103억 원의 기금이 조성됐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673명에게 8억 50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장학 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황]
2012년 현재 영암군에는 공립 유치원 15개, 병설 유치원과 사립 유치원 3개를 합쳐 모두 18개의 유치원이 있고, 16개의 초등학교, 2개 분교장이 있다. 영암군 내 읍지역과 최근 개발되고 있는 삼호읍을 중심으로는 학생 수가 증가되나 기타 읍면은 농촌 노령화 인구로 학생 수가 감소되고 있는 추세다. 초등학교 교직원은 총 395명이 근무하고 있다. 2012년 3월 현재 영암군에는 모두 12개 중학교, 6개 고등학교가 있다. 2012년 4월 1일 현재 영암군 삼호읍에 세한 대학교와 학산면에 동아인재대학교가 있다. 특수 학교로는 은광 학교와 소림 학교가 있다.
한편, 해방 이후 문해(文解) 교육 등이 이루어졌고, 평생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영암군에서도 평생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07년 7월 교육 인적 자원부에서 추진한 평생 학습 지도 사업에서 영암군은 평생 학습 도시로 지정돼 평생 학습 도시 중점 사업으로 왕인 문해 학교를 시작하여 문해 교육 지도 양성 과정을 개설·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