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4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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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발)당그래,당길래·땡길개,밀기,밀개·멸개,미래,발곰배,발곰방메,나무소스랑,나무쇠스랑,거문데,고물개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헌 |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곡식을 펴서 널고 고르거나 씨를 뿌린 뒤 흙을 긁어 덮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
[개설]
발고무래 는 멍석에 곡식을 말릴 때 쓰는 고무래와 흙덩이를 깨는 곰뱅이보다 능률적으로 긁거나 밀어서 고를 수 있도록 그 기능이 발전된 농기구다. 즉 곰뱅이의 몸체 아래쪽 면에 4~6개의 구멍을 뚫고 그곳에 5~10㎝ 길이의 손가락 굵기만 한 나무막대나 대나무를 깎아 만든 발을 일정한 간격으로 끼워 박아 갈퀴 또는 쇠스랑처럼 만들었다. 나무막대로 발을 해박은 것을 시파(柴杷)라 하고, 대나무로 발을 해 꽂은 것을 죽파(竹杷)라 하는데, 전라남도 영암에서는 이것을 이용해 곡식의 경우 멍석에 펴서 널 때 긁거나 밀어서 고르고, 흙덩이는 잘게 깨뜨리고 씨앗을 덮으며 돌은 긁어모아서 버리는 데 사용한다.
발고무래 는 예전에 고미래 또는 고미레라 했고, 한문으로는 궤(机), 우(耰), 파로(把橯), 목팔(木朳), 목파(木爬), 뇌목(檑木)이라 적었다. 또한 발고무래를 사용하는 동작이 당기거나 미는 방식이어서 지방에 따라서 (발)당그래[경기도 덕적, 전라남도 거문도, 경상남도 영산], 당글개[전라남도 거문도], 당길래·땡길개[충청북도 봉양], 밀기[경상북도 성주], 밀개·멸개[강원도 도계], 미래[광주광역시 광산]라고도 부른다. 이밖에도 발곰배[경상남도 창녕·영산], 발곰방메[전라남도 고흥], 나무소스랑[전라북도 무주], 나무쇠스랑[강원도 도제]이라고도 하며, 거문데[경기도 안산], 고물개[충청남도, 경기도 안성]라고도 하는데 기능으로 보아 발고무래 보다는 발곰배가 적당할 듯싶다. 전라남도 영암 지방에서는 이것을 발곰배 또는 발곰방메 등으로 불린다.
[연원 및 변천]
발고무래 는 전라남도 무안군의 양장리 유적에서 출토된 상수리나무로 만든 고무래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크기는 몸체 길이 75.6㎝, 폭 4.7㎝, 두께 1.5㎝이다. 무안 양장리 유적은 논농사와 관련된 수리시설과 집터 그리고 무덤 터가 복합된 기원후 3~5세기의 유적이다. 이곳 수리시설 저습지에서 고무래를 비롯한 괭이·쇠스랑·낫자루·절굿공이·구유 등의 농기구부터 문짝·의자·바가지·기타 용도 미상의 목기류와 말목을 포함한 각종 건축 부재 등이 다양하게 출토되어 삼국 시대 목제 유물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하였다.
출토된 고무래는 자루와 몸체로 이루어져 있으나 자루는 대부분 훼손되어 원형을 알 수 없다. 몸체 외면은 도구를 이용하여 매끄럽게 깎아 다듬은 흔적이 관찰되고, 몸체 중앙의 양편으로 1.3~2.4㎝ 정도 크기의 장방형 구멍이 1개씩 관통되어 자루를 끼웠다. 발은 모두 29개로 매우 촘촘하게 만들었으며 중앙 부분의 발이 가장자리보다 마모가 심하다. 고대의 고무래 자료로는 유일한 것이나 이러한 형태의 고무래는 일본에서도 야요이 시대 후기나 고분 시대 전기에 주로 출토된다.
[형태]
영암 지역에서 사용한 발고무래의 형태는 일정하지 않으나 직사각형, 반달형 또는 사다리 형으로 길이가 30~40㎝, 너비가 10~20㎝ 되는 나무판자나 곰뱅이처럼 둥근 통나무에 1.5m 가량 되는 자루를 박아 만든 고무래 정(丁)자의 형태를 이룬다. 또 발을 단 것과 써레의 몸처럼 모난 나무에 발을 단 것 등이 있는데,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예컨대 거문도의 것은 발이 여섯 개로 길이는 16㎝, 둘레 10㎝이고, 자루의 길이는 150㎝에 이르는 대단히 큰 것이다. 반면에 전라남도 구례의 것은 둥근 통나무에 발을 달았는데 거문도의 것에 비하면 대단히 빈약하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발고무래 로 하루 한 사람이 2314.05~2644.63㎡[700~800평]의 보리밭을 덮을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보토 기계 등을 이용하므로 일부 농가에서만 쇠갈퀴처럼 개량화된 발고무래를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