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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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甕器-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헌 |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사용한 질그릇과 오지그릇의 총칭.
[개설]
옹기그릇 은 질그릇과 오지그릇의 총칭이다. 질그릇은 진흙만으로 초벌구이를 한 그릇으로 잿물을 입히지 않아 윤기가 없고 겉이 테석테석한 그릇이고,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오짓물을 입혀 다시 구운 그릇으로 윤이 나고 단단하다. 그런데 근대 이후 질그릇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옹기는 주로 오짓물이 입혀진 오지그릇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연원 및 변천]
옹기그릇 은 상고 시대부터 관이나 제기, 식기, 솥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와기전(瓦器典)이라 하여 옹기를 굽는 직제까지 두었다고 하며, 조선 시대에도 서울과 지방에 100여 명의 옹기장을 두었다. 그러나 도자기 문화의 발달로 옹기는 점차 저장 용구나 주방 용구로 이용되어 살림 그릇으로서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다. 현재는 기타 식기 재료의 발달로 그 사용의 범위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영암 지역에는 신라 토기 제작 가마 유적인 영암 구림리 요지[사적 제338호]가 아직까지 군서면 서구림리에 남아 있다. 시유 도기 문화의 발상지인 영암 구림리 요지는 영암과 이웃한 해남의 녹청자와 강진의 청자 제조 기술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옹기의 경우는 신북면 양계리와 이천리에서 이상수가 선조의 뒤를 이어 영암 옹기라는 상호를 내걸고 다양한 옹기그릇을 제작 판매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형태]
옹기그릇 은 부엌 한 귀퉁이에 두어 길어오는 물을 받아 놓고 퍼내 쓰는 깊숙한 두멍을 비롯하여 독, 항아리, 중두리, 감항아리, 장독뚜껑과 소라기, 동이, 자배기, 버치, 방구리, 뚝배기, 알뚝배기, 사구, 푼주, 석간주, 오지병, 질병, 사기병, 자라병, 초병, 오리병, 거위병 등 종류가 수없이 많고 형태도 각양각색으로 조금씩 다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옹기그릇 은 조상의 숨결과 영혼이 깃들어 있는 예술품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옹기 기술의 오묘함이 널리 회자하게 되었다. 하나의 옹기그릇은 진흙에서 시작하여 가마구이까지 거치는 동안 수많은 손이 그리고 장인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이젠 플라스틱 제품에 밀려 차츰 그 빛을 잃어가고 쇠퇴의 길에 섰으나 우리 민족의 영혼과 조상의 숨결을 다시 찾기 위해서 앞으로 품질 개량 등의 연구가 요청된다. 옹기그릇은 그 옹기 안에 길게 갈무리할 식품을 담아서 변질을 막아내는 우리 조상의 슬기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