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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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湖里 |
영어공식명칭 | Geumho-ri |
이칭/별칭 | 아릿거무,중간금호,웃거무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금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에 속해 있는 법정리.
[개설]
금호리는 영덕군 강구면 북동쪽에 자리하며, 행정리는 금호1리·금호2리·금호3리로 되어 있다. 자연 마을은 아릿거무[아릿금호·하금호], 중간금호·큰마을, 웃거무[웃금호·상금호] 등이 있다.
[명칭 유래]
금호리(錦湖里)의 지명 유래는 큰 물가[오십천]가 되므로 거무리[거무·검호(劍湖)·거동(巨洞)·금동(今洞)]이라 부르다가 '금호'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오십천이 한 줄기로 합쳐지기 전에 현 금호리 앞으로 세 갈래의 강줄기가 흘렀는데, 이것을 삼강이라 하였으며, 이 삼강의 물줄기가 호호대(浩浩臺) 앞에서 칼날같이 날카롭게 금호리 앞을 찔러 흐르기 때문에 검호(劒里)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1925년 큰 홍수 시 오십천 유로가 현 남산리 마을 앞으로 변경되면서 칼 검(劍) 자 대신 비단 금(錦) 자를 써서 금호(錦湖)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금호1리는 금호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아릿거무[아릿금호·하금호(下錦湖)]라고 불린다. 금호2리는 마을 중심부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고 해서 금호(錦湖)라고 불렸으며, 3개 마을 중 중간에 자리하여 중간금호(中間錦湖), 제일 큰 마을이라고 해서 큰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금호3리는 금호리 윗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웃거무[웃금호·상금호(上錦湖)]라고 불리는데, 마을 서쪽 오십천 건너 소월리 들온산[入來山][49.2m]이 마을을 향해 서 있다고 하여 외지에서 이 마을로 들어와 사는 사람이 잘산다는 이야기가 있다.
[형성 및 변천]
금호리는 15세기 초 평산신씨(平山申氏)가 금호2리·금호3리 마을을 개척하였고, 조선 중종 연간에 울진임씨(蔚珍林氏)가 금호1리 마을에 정착한 뒤 영천이씨(永川李氏)가 입주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盈德縣) 중남면(中南面) 지역으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현을 군(郡)으로 개칭할 때 영덕군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1일 일제강점기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상금동·하금동·둔전·소월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호동이라 하고 영덕면에 편입되었다.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972호로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금호동은 금호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금호리는 동해로 유입되는 오십천의 좌안에 자리한다. 오십천의 범람으로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어 마을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동쪽은 산지로 고불봉[235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민봉[182.4m], 봉화산[141m]까지 이어지고,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선상지를 형성한다.
[현황]
금호리의 2020년 말 면적은 4.60㎢이고, 2021년 5월 기준 총 340가구에 629명[남 314명, 여 315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금호리 동쪽은 금진리와 하저리, 서쪽은 오십천을 경계로 원직리와 영덕읍 남산리, 남쪽은 강구리, 북쪽은 영덕읍 남산리와 우곡리가 접해 있다. 금호리 북서쪽으로는 강구역에서 영덕역으로 이어지는 철로가 지나가고 영덕군환경사업소가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