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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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津里 |
영어공식명칭 | Geumjin-ri |
이칭/별칭 | 쇠날기,웃말,아랫말,소하동,서사포,금진육리,금진해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금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에 속해 있는 법정리.
[개설]
금진리는 영덕군 강구면 동쪽에 있으며, 행정리는 금진1리·금진2리로 되어 있다. 자연 마을로는 웃말, 아랫말, 소하동이 있다.
[명칭 유래]
금진리의 유래는 마을 뒷산에서 구리가 많이 생산되어 ‘쇠날기’라 하다가 ‘쇠나리[쇠나루]’, 이후 ‘금진(金津)’이 되었다. 1469년(예종 1)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서 ‘금진’으로 추정되는 서사포(西賜浦)라는 지명이 보인다. 여기서 ‘서’는 쇠를 말하며 ‘사’는 내린다는 뜻으로, 이는 쇠나리를 한자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1789년(정조 13)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금진육리(金津陸里), 금진해리(金津海里)라는 기록이 나온다.
[형성 및 변천]
금진1리는 1580년경에 김해허씨(金海許氏)와 밀양박씨(密陽朴氏)가 마을을 개척하였고, 금진2리 소하(小下) 마을은 1670년대 중후반 김해김씨(金海金氏)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盈德縣) 동면(東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현을 군(郡)으로 개칭할 때 영덕군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1일 일제강점기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소하동을 병합, 금진동이라 하여 오보면(烏保面)에 편입되었다.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972호로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금진동은 금진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금진리 대부분은 높이 약 150m 이하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동쪽은 동해와 접한 해안 지역이다. 서쪽 봉화산[141m]을 중심으로 북동-남서 방향으로 높이 약 150m의 산지가 이어져 있고, 동쪽으로 점차 높이가 완만해진다. 동해와 접하는 해안 지역에는 소규모의 사빈이나 역빈, 파식대 등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금진리의 2020년 말 면적은 1.64㎢이며 2021년 5월 기준 총 202가구에 326명[남 140명, 여 186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동해에 접하고 서쪽은 금호리, 남쪽은 강구리, 북쪽은 하저리와 접해 있다, 북동-남서 방향으로 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바닷길로 유명한 국가지원지방도 제20호선인 영덕대게로가 마을 앞을 지난다. 이 해안도로를 따라 카페와 펜션들이 들어서 있다. 금진1리는 현 마을회관 기준으로 쇠나리 위에 있는 웃말[웃마을, 웃대마]과 쇠나리 아래에 있는 아랫말[아랫마을, 아릿마]로 구분된다. 금진2리는 금진1리에서 남쪽 해안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로, 소하동(小下洞·小河洞)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