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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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盈德- |
영어공식명칭 | Yeongdeok Wuelwuelichungchung |
이칭/별칭 | 달넘세,절구세,대문열기,산지띠기,동애따기,재밟기,실꾸리감기,실꾸리풀기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다원 |
놀이 개시 시기/일시 | 정월대보름 전후 - 영덕 월월이청청 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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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시기/일시 | 1910~1953년 사이 - 영덕 월월이청청,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소멸 |
재현 시기/일시 | 1982년 - 영덕 월월이청청, 영덕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재현[연행]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11월 - 영덕 월월이청청,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6호 지정 |
놀이 장소 | 영덕 월월이청청 놀이 장소 - 경상북도 영덕군 노물리 |
주관 단체 | 영덕여자고등학교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영덕로 206[덕곡리 106-1] |
성격 | 민속|놀이 |
노는 시기 | 설날과 이월 초하루[영둥날] |
예능 보유자 | 영덕여자고등학교|영덕월월이청청보존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6호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여성들의 놀이.
[개설]
영덕 월월이청청은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밝은 보름달 아래서 가장 생산력이 왕성한 젊은 여성들이 원형, 선형, 나선형 등의 다양한 형태를 만들며 집단적으로 노는 놀이이다.
[연원]
임진왜란 당시 영덕을 침입한 적이 있는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쳐들어오니 경계하라는 뜻으로 부녀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논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는 달이 청청한 밤에 춤추고 노래하며 논다고 해서 월월이청청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놀이의 도구 쌔끼줄, 놀이의 장소는 또래집단의 구성원이 사는 마당이 넓은 집이나 마을의 공터와 백사장이다.
[놀이 방법]
원무형의 월월이청청은 놀이할 사람들이 모이면 여럿이 손을 잡고 원을 만들어 오른쪽으로 돌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천천히 걷다가 점차 속도가 빨라지면 외발겹쳐뛰기로 바뀐다. 노래는 선후창 형식이다. 중모리에서 시작해 자진모리에 이르기까지 속도가 점차 빨라진다.
나선무형은 달넘세와 실꾸리감기와 실꾸리풀기다. 모두들 원을 중심으로 바라보고 빙 둘러앉아서 옆 사람의 손을 잡는다. 앞소리꾼이 일어나 달넘세 소리를 메기면 바로 왼쪽 편 사람과 그 옆 사람이 맞잡은 손을 원의 안쪽 방향에서 바깥 방향으로 타 넘는다. 원무형 월월이청청과 마찬가지로 선후창 형식의 노래에 맞추어 노는데, 처음에는 느리게 시작하다가 신명이 나면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놀이가 계속되면 행렬은 나선형을 이루면서 점차 커지고 마침내 마지막 사람에 이르면 다시 원형이 된다. 실꾸리감기와 실꾸리풀기는 실을 감았다가 풀었다가 하는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다. 일렬종대형을 만든 뒤에 맨 앞의 사람이 제자리걸음을 하면 크게 원을 돌면서 선두를 중심에 두고 모두 칭칭 감는다. 실을 다 감으면 모두 얼싸안은 형태가 되는데, 함께 뛰면서 제창 형식의 노래를 하다가 다시 실을 풀기 시작한다. 실풀기는 한가운데 있는 선두가 빠져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행로의 사람들이 팔을 들어 주면 선두의 뒤를 따라 차례대로 빠져나온다.
단선무형은 재밟기, 산지띠기, 동애따기,인(人)줄 당기기 등이다. 재밟기는 일렬종대를 만든 상태에서 허리를 높이고 치마를 덮어쓴 뒤에 앞 사람의 허리를 잡고 있으면 맨 뒤에서부터 등을 밟아 나가는 놀이이다. 늦은 자진모리장단의 교환창을 부르면서 진행되는데, 등을 밟고 나간 사람을 좌우에서 부축하는 사람이 있다. 산지띠기는 술래[오니, 귀신]가 정해지면 나머지 사람들은 선두의 뒤로 앞사람의 허리나 치마꼬리 등을 잡고 자례대로 늘어선다. 놀이를 시작하면 교환창으로 노래를 주고받은 위에 술래가 꼬리를 잡으려고 한다. 선두는 노래의 앞을 가로막고 술래는 선두를 뿌리치면서 꼬리를 떼려 한다. 놀이의 초두에는 느린 교환창을 부르지만 술래의 꼬리따기가 시작되면 노래 없이 매우 빠른 동작으로 움직이면서 술래는 피하는 역동적인 동작만 남는다. 동애따기는 술래를 정하고 선두가 나무나 기둥 또는 바위와 같이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안고 있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선두의 뒤에 차례대로 줄을 만들어 앞사람의 허리를 껴안고 깍지를 낀다. 준비가 끝나면 교환창 형식의 노래를 주고받은 뒤에 동애따세, 동애따세라고 하면서 술래가 맨 뒤의 사람부터 차례대로 떼어 낸다.
대선무형은 절구세이다. 절구세는 두 줄 또는 세 줄이 횡대형을 이루어서 벌이는 놀이로서 일반적인 것은 마주보고 선 두 열이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는 절굿이다. 옆 사람과 손을 치켜들었다 내리면서 왼발로 겹쳐 뛰며 전진하면 상대 열로 같은 동작을 하면서 뒤로 물러난다. 이어서 늘어난 줄이 전진하고 상대 줄은 후퇴하면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선후창 형식의 노래가 뒤따른다. 교차형은 대문열기이다. 정해진 술래 두 사람이 마주보고 손을 맞잡은 뒤 높이 들어 대문 형상을 만들면, 앞장선 사람의 허리를 연이어 잡고 늘어선 이들이 교환창 형식의 노래를 주고 받으면 그 밑을 통과한다.
기타 형은 콩심기, 깨끔발싸움, 가마싸움, 게줄당기기, 인(人)줄당기기 등이다. 먼저 콩심기는 술래가 정해지면 빙 둘어앉거나 옆으로 늘어앉은 상태에서 놀이를 진행한다. 앉은 이들은 모두 치마를 벌린 상태로 옆 사람에게 콩 또는 조그만 돌멩이를 '콩받아라'고 하면서 치마에 넣거나 넣는 시늉을 한다. 이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술래는 누구의 치마 속에 콩이 들어 있는가를 맞추어야 한다. 깨금발싸움은 두 편을 나누거나 두 사람이 나서서 깨금발을 한 뒤에 상대방을 밀어붙여서 넘어뜨리는 놀이이다. 가마싸움은 두 사람이 양손을 엇갈리게 잘아서 정(井) 자형의 가마를 만든 뒤 그 위에 사람을 태워 상태편과 싸움을 벌여 먼저 땅에 떨어지는 쪽이 지는 놀이다. 게줄당기기는 두 사람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엎드려 엉덩이를 마주한 상태에서 먼저 한 사람이 줄을 묵에 건 뒤 사타구니 맡에서 통과시켜 주면 나머지 사람 역시 그 줄을 받아 목에 건 뒤에 각기 전방으로 기어가기 시작한다. 먼저 끌고 가는 쪽이 이긴다. 인(人)줄당기기는 두 편을 나눈 뒤에 선두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일렬로 죽 늘어서면 선두들은 서로 팔을 건다. 팔을 걸고 나면 각 편은 상대편을 끌어당기기 시작하는데, 먼저 끌려오거나 줄이 끊어지는 쪽이 진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영덕 월월이청청은 밝은 보름달 아래서 생산력이 왕성한 젊은 여성들이 원형, 선형, 나선형 등 다양한 형태를 지으면 집단적으로 노는 놀이다. 이와 같은 놀이들은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각 민족과 문화에서 보편적으로 전승되었으며, 이 놀이에서 연행되는 춤은 대개 풍요와 다산을 축원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현황]
영덕 월월이청청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대부분 전승이 단절되었으나, 1972년 조동일이 경상북도 영덕군 노물리를 현지 답사하여 월월이청청의 사설을 채록하고, 이것의 유희요적 성격과 의미를 밝혔다. 1980년 문화재관리국에서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사업의 일환으로 월월이청청을 채록하였다. 하지만 이들 조사는 민요 조사를 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놀이의 내용과 형식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1978년 영덕문화원에서 영덕군 노물리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월월이청청을 재구성하였다. 1982년 영덕여자고등학교학생들이 월월이청청을 연행하기 시작하였다. 1984년 4월에는 180명이 참여하는 초대형 놀이로 재구성된다. 1981년 추가 조사를 수행하여 연행 내용을 보충하고, 그 결과를 정리하여 1984년에 발표하였다. 이후로도 지속적인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2009년 11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