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백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58
한자 大興白氏
영어공식명칭 Daehung-Baek Clan
이칭/별칭 수원백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303년 - 백문보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374년 - 백문보 사망
본관 대흥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입향지 입향지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각리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집성촌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백우경(白宇經)
입향 시조 백견(白堅)|백문보(白文寶)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백문보를 득관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개설]

대흥백씨(大興白氏)는 백견(白堅)·백문보(白文寶)[1303~1374] 부자를 입향조로 하는 성씨이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연원]

백씨는 신라시대 인물인 백우경(白宇經)을 원시조로 한다. 백우경은 당나라 소주(蘇州) 출신으로 신라에 망명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를 조선시대 모화사상(慕華思想)으로 보고, 실제로는 백제시대 소주[지금의 충청남도 태안군]에 세거하던 백제 유민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백우경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자옥산 아래에 정착하여 학문보급에 힘썼다고 하나, 후손의 계통이 실전되어 고려 초에 중랑장을 지낸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백창직 이후 백씨는 청주·직산·대흥·수원 등 여러 갈래로 분파되었으나 대흥백씨가 언제 어느 선조로부터 분관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영덕 지역의 대흥백씨들은 백창직의 9세손인 백견(白堅)백견의 아들 담암(淡庵) 백문보(白文寶)를 중심 조상으로 삼고 있는데, 백문보직산군(稷山君)으로 봉해진 것으로 보아 그 후손들이 직산백씨로부터 분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직산은 지금의 천안시 직산면 지역이며, 대흥은 충청도 예산 지역의 옛 지명이다.

[입향 경위]

대흥백씨로 영덕 지역에 처음 입향한 이는 백견·백문보 부자이다. 백견은 충청도 대흥군 출신으로 고려 말에 중랑장을 거쳐 승평부사(昇平府使), 전리사판서(典理司判書)를 역임한 인물인데 영해박씨 박감(朴瑊)의 사위가 되어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각리리에 정착하였으나, 이후 수재(水災)를 만나 창수면 인량리로 이거했다고 한다. 백견의 아들 백문보는 광주목사·전리사판서·정당문학을 역임하고, 공민왕의 세자 왕우(王禑)[뒤의 우왕]의 사부로서 직산군에 봉해졌다. 사후 충간(忠簡)의 시호를 받고 운산서원(雲山書院)에 배향되었다. 백문보의 후손 중 현달한 인물로는 퇴계의 학문을 계승하고 임진왜란 때 창의한 족한당(足閒堂) 백인국(白仁國), 백민수(白民秀), 성헌(惺軒) 백현룡(白見龍) 등이 있다.

[현황]

경상북도 영덕군 관내에서는 영해면 원구리에 영양남씨·무안박씨와 더불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2015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영덕군 내에 거주하는 대흥백씨는 167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수원백씨로 기록된 96명 중에도 대흥백씨가 일부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유적]

1812년 건립된 운산서원에 백문보백현룡을 제향하였으나,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 현재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영덕운산서원강당(盈德雲山書院講堂)[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이 복원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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