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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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司宰少監朴強傳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초기 |
집필자 | 권미숙 |
[정의]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이 영덕에 귀양 와서 지은 작품.
[개설]
「사재소감 박강전」은 조선 전기 문신 권근(權近)[1352~1409]이 쓴 박강(朴強)에 대한 전기(傳記)이다. 권근은 영덕으로 귀양을 왔을 때 박강(朴強)이란 사람을 만나서 박강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박강 자신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박강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구성]
이야기의 구성은 모두 4부분으로 되어 있다. 처음 부분은 박강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 부분은 박강의 아버지, 세 번째 부분은 박강 자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권근이 박강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내용]
「사재소감 박강전」은 권근이 영해에 귀양 왔을 때 영덕 출신이었던 박강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쓴 박강에 대한 전기이다. 권근은 이숭인(李崇仁)이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서 부정한 재물을 모았다고 탄핵되어 쫓겨난 일이 있었는데, 그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우봉(牛峯)에 유배되었다가, 그 뒤 영해(寧海)·흥해(興海) 등을 전전하며 유배 생활을 하였다.
「사재소감 박강전」에 실려 있는 내용을 간추리면, 박강(朴强)은 영해부(寧海府) 출신으로 대대로 본부(本府)에서 아전 노릇을 해왔다. 박강의 증조부였던 성절이 세운 공으로 인해 그들의 후손은 아전 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다. 박강은 홍건적의 난과 정미년과 홍무(洪武) 신해년에 있었던 왜적의 침입에 큰 공을 세워 사재소감(司宰少監)에 임명되었고, 여러 번 옮겨서 예의총랑(禮儀摠郞)에 이르렀다. 그 뒤에 시골에 은퇴하여 있다가 병인년에 나라에서 원수 육려(陸麗)를 보내어 영해(寧海)에 주둔할 때에 박강은 또 따라가서 경주 송라촌(松蘿村)에서 왜적과 싸웠는데 칼을 휘둘러 대여섯 명의 목을 베었다. 무진년 10월에 왜적이 우리의 배를 포위하고 영해성(寧海城)을 침범할 때도 박강의 힘으로 온 고을이 무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박강이란 인물은 힘이 세고 용맹하며 또한 공로가 있어도 자랑하지 않았다. 박강의 나이가 벌써 59세였는데도 힘이 조금도 줄지 아니하였다. 또 몸이 크고 기걸(奇傑)하며 어깨가 떡 벌어져 있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데, 시골 사람이 농담으로 말하기를, “그 외모를 보아서는 두어 말이라도 마실 수 있을 듯한데, 그 입으로는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한다.” 하였다. 대개 건장하고 힘이 센 사람은 술주정이 많은 법인데, 박강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가상한 일이라고 하면서, 권근은 「사재소감 박강전」에서 박강에 대해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아, 신축년 난리에 능히 먼저 올라가서 도성(都城)을 회복하였고, 계묘년 전쟁에는 선봉이 되어 반역을 무찔렀으니 그 공적이 얼마나 컸는가.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 충의를 가진 용사가 위급함을 당하여 목숨을 바치며, 팔을 뽐내고 먼저 소리쳐서 칼날을 무릅쓰고 강한 적을 꺾으며 용맹을 얻어 적을 막아내어 특수한 공적을 세웠으나, 위에서 추천하여 발탁해 주는 사람이 없고 아래로는 그것을 기록하여 주는 친구가 없이 운수가 나빠서 공신에 오르지도 못하고, 사적이 없어져서 전하지도 못하여, 마침내 시골에서 죽어 버리어 초목과 함께 썩고 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것은 가엾은 일이다. 그러므로 박강에 대하여 전기를 쓴다."
권근은 시문집으로 『양촌집(陽村集)』 40권을 남겼는데 그중 권지 21 전류(傳類)에 「우인효자군만전(優人孝子君萬傳)」, 「유생배상겸(儒生裴尙謙傳)」과 함께 「사재소감 박강전」이 실려 있다.
[특징]
고려시대에는 고을의 정치적 위상과 인적 연고에 따라 읍격(邑格) 조정이 빈번하였다. 「사재소감 박강전」에 등장하는 영해 지역의 읍격 조정도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영해도 처음에는 덕원도호부(德原都護府)였다가 동여진(東女眞)이 들어와서 침략할 때에 성이 함락되어 지관(知官)으로 격을 낮추었으며, 관할하던 보성(甫城)은 복주(福州)에 귀속되기도 하였다. 또한 「사재소감 박강전」 작품을 통해 보면 옛 영덕군에는 왜적들이 자주 침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강 같은 인물이 있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합심하여 지역을 잘 지켜낼 수 있었다. 그리고 「사재소감 박강전」은 공을 세우고도 추천하여 발탁해 주는 사람이 없고, 사적이 없어져서 전하지도 못하고, 시골에서 초목과 함께 썩고 마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권근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의의와 평가]
「사재소감 박강전」에서 특기할 사항은 박강이란 인물의 능력이다. 박강은 향리 출신이면서도 군공(軍功)을 세워 관직에 진출하였고, 당시 석학이던 권근과 교류하였다. 이는 훗날 조선시대를 주도하는 세력이 박강과 같은 신흥 세력임을 나타내며, 이들 세력은 무인의 기질뿐 아니라 학문적 소양도 갖추었다는 것을 글에서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사재소감 박강전」을 통해 박강과 같은 인물들이 양반 계층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러한 사례는 영덕군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 향리 출신의 신흥 세력들이 양반으로 편입되는 모습을 살피는 데 중요한 사료(史料)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