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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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寧海府 |
영어공식명칭 | YeongHae-bu |
이칭/별칭 | 단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1310~1413년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개설]
영해부(寧海府)는 1310년(충선왕 복위 2) 예주목(禮州牧)을 개편한 지방행정구역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을 중심으로 창수면·병곡면·축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308년 복위한 충선왕[고려 제26대 왕]은 교서를 통하여 나라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고, 관리의 녹봉을 넉넉하게 지급하며, 백성의 살림을 풍족하게 하기 위해 13조의 개혁안을 발표하였다. 이 개혁안 가운데 "모든 아문(衙門)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발전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하나의 체계에 매이지 않아야 한다. 하물며 우리나라의 경우 관직이 쓸데없이 많이 설치되어 이름만 있고 실제 하는 일이 없으니 이제 시대의 변화를 참작해 통폐합함으로써 각자의 직책에 효율적으로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여 지방 행정구역에 대한 개편을 단행한 배경을 언급하고 있다. 이에 앞서 영해부는 예주(禮州)였는데, 1259년 최씨 무인정권을 무너뜨리고 위사공신(衛社功臣) 에 녹훈된 박송비(朴松庇)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를 거쳐 예주목으로 승격되었다. 이러한 인적 연고에 의한 행정구역 승격이 무분별하게 진행되었기에 1310년 읍격 조정이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영해부로 개편된 것으로 여겨진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조를 비롯한 여러 읍지에는 영해는 "본디 고구려의 우시군(于尸郡)인데, 신라에서 유린군(有隣郡)으로 고쳤고, 고려에서 예주로 고쳐, … 고종(高宗) 46년[1259] 기미에 위사공신(衛社功臣) 박송비(朴松庇)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올려서 덕원 소도호부로 삼았다가, 뒤에 예주목으로 올렸고, 충선왕 2년[1310] 경술에 여러 목(牧)을 없앰에 따라 영해부로 고쳤다. 본조 태조 6년 정축 6월에 비로소 진(鎭)을 두고 병마사(兵馬使)가 부사(府使)를 겸하게 하였는데, 태종 계사년[1413]에 예(例)에 의하여 도호부로 고쳤다. 별호(別號)는 단양(丹陽)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1413년(태종 13) 조선 왕조의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해도호부로 조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해부의 설치는 중세 지방 행정구역이 인적 연고에 따라 조정되는 면모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