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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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基州 |
영어공식명칭 | Gi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위은숙 |
제정 시기/일시 | 940년 - 기목진에서 기주로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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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1413년 - 기주에서 기천현으로 개정 |
관할 지역 | 기주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
[정의]
940년부터 1413년까지 영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개설]
기주(基州)는 고려 초기부터 1413년(태종 13)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는 후삼국 통일 직후 지방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호족 세력의 공과(功過)를 감안하여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기주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0 지리지 경상도 기천현(基川縣)조에는 “신라 때 이름은 자세히 알 수 없는데, 혹은 기목진(基木鎭)이라고도 한다. 고려 때 기주로 일컫고, 현종 무오년[1018]에 길주(吉州)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명종 2년 임진[1172]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뒤에 다시 안동(安東)에 붙였다가, 공양왕 경오년[1390]에 다시 감무를 두고, 안동 임내 은풍현(殷豐縣)을 이에 붙였다. 본조 태종 계사년[1413]에 예(例)에 의하여 기천현감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지2 안동부 기주현조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5 풍기군조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내용]
기주는 신라 때 군사기지였던 기목진이었는데, 고려 초기 기주로 개정되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후삼국 통일 직후인 940년(태조 23) 무렵 전국적인 지방행정구역 개편이 진행될 때 함께 개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변천]
처음 기주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으며, 1018년(현종 9)에는 길주의 속현이 되었다. 그러다 12세기 이후 지방관 파견이 증가하던 추세에 맞추어, 1172년(명종 2) 비로소 감무가 파견되었다. 이후 다시 안동부의 속현이 되었고, 1390년(공양왕 2)에 다시 감무가 두어졌다. 그리고 이때 지금 예천군 효자면과 은풍면 일대에 있던 은풍현을 속현으로 내속하였다.
조선 초기인 1413년에 대대적인 지방행정구역 개편이 진행되었다. 이때 읍명이 실제 고을의 읍격과 맞지 않는 경우 명칭을 조정하였는데, ‘기주’라는 지명도 읍격과 맞지 않아 기천현으로 개정되었으며, 지방관은 종6품의 현감을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의의와 평가]
기주의 설치와 읍격의 승강, 감무 설치 등은 고려시대 지방행정제도의 변모 양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