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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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興州 |
영어공식명칭 | Heungju |
이칭/별칭 | 순정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위은숙 |
제정 시기/일시 | 940년 - 급산군에서 흥주로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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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1274년 - 흥주에서 흥녕현으로 개정 |
개정 시기/일시 | 1313년 - 흥녕현에서 흥주로 개정 |
개정 시기/일시 | 1348년 - 흥주에서 순흥부로 개정 |
관할 지역 | 흥주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
[정의]
고려 초기부터 원간섭기까지 두 차례에 걸쳐 영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개설]
흥주(興州)는 940년(태조 23)부터 1274년(충렬왕 즉위년), 1313년(충숙왕 즉위년)부터 1348년(충목왕 4) 사이에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는 후삼국 통일 직후 지방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호족 세력의 공과(功過)를 고려해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흥주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0 지리지 경상도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조에는 “신라에서 급산군(岌山郡)으로 고치고, 고려에서 흥주로 고쳤다. 현종 무오년(1018)에 길주(吉州) 임내에 붙였다가, 뒤에 순안현(順安縣)으로 이속시켰다. 명종 1년(1171)에 비로소 감무를 두었는데, 충렬왕 갑술년(1274)에 태(胎)를 안치하고 흥녕현(興寧縣)으로 고쳐서 영(令)을 두었으며, 충숙왕 계축년(1313)에 또 태를 안치하고 승격시켜 지흥주사(知興州事)로 삼았다. 충목왕 무자년(1348]에도 태를 안치하고 순흥부(順興府)로 승격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지2 안동부 흥주조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내용]
흥주는 통일신라 때 급산군이었는데, 고려 초기 흥주로 개정되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후삼국 통일 직후인 940년(태조 23) 무렵 전국적인 지방행정구역 개편이 진행될 때 함께 개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변천]
흥주는 1018년(현종 9) 길주[지금 안동]의 임내, 즉 속현이 되었다가 순안현으로 이속되었다. 그러다 1171년 처음으로 감무가 파견되고 독립하였다. 이후에는 왕의 태를 안치했다는 이유로 세 차례에 걸쳐 승격이 이루어졌다.
[의의와 평가]
전통시대 지방행정구역은 호구·전결 및 산천의 경계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해당 고을의 인적 연고나 이해관계에 따라 읍격이 승강하거나, 영역이 확대 및 축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왕의 태를 안치한 곳이라 하여 세 차례에 걸쳐 승격이 이루어졌던 흥주는 이러한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