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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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榮州順興於宿墓 |
영어공식명칭 | Tomb of Eo Suk in Sunheung, Yeongju |
이칭/별칭 | 장군무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 산95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강재현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71년 8월 18일 - 영주 순흥 어숙묘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발굴조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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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71년 9월 2일 - 영주 순흥 어숙묘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발굴조사 완료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4년 12월 6일 - 영주 순흥 어숙묘 사적 제238호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8년 12월 10일 - 영주 순흥 어숙묘 국가지정문화재 문화재보호구역[지정구역: 1필지 1,244㎡]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주 순흥 어숙묘 사적 재지정 |
소재지 | 영주 순흥 어숙묘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 산95 |
성격 | 벽화고분 |
양식 | 굴식돌방무덤 |
관련 인물 | 어숙 |
크기(높이,지름) | 봉분 지름 16m|널방 규모 동서 길이 310~314㎝, 남북 길이 245~250㎝, 높이 260~270㎝ |
소유자 | 창원황씨 봉례공파 문중 |
관리자 | 영주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에 있는 삼국시대 벽화고분.
[개설]
영주 순흥 어숙묘(榮州順興於宿墓)는 1971년 조사로 알려진 벽화고분으로 산 경사면에 조성된 굴식돌방무덤이다. 내부의 모든 벽면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으나 대부분 떨어지고 널길 천장과 돌문에만 남아 있다. 돌문에는 묘지(墓誌)가 새겨져 있어 축조 연대와 무덤 주인공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신라 고분이다.
[위치]
영주 순흥 어숙묘는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서쪽에 있는 비봉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의 남사면에 위치한다. 남동쪽으로 직선거리 410m 지점에 영주 순흥 벽화고분(榮州順興壁畵古墳)[사적 제313호]이 조성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영주 순흥 어숙묘는 1935년경 도굴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벽화고분의 존재를 알았다고 한다. 1970년 마을 주민이 제보하여 영주 순흥 어숙묘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1971년 마을 촌로의 증언에 따라 도굴갱의 흔적이 있는 2~3기의 무덤을 시굴 조사하여 영주 순흥 어숙묘를 찾게 되었다. 발굴조사는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1971년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실시하였다. 영주 순흥 어숙묘 조사 결과 널길이 달린 굴식돌방무덤으로, 돌문에 묘지명이 새겨져 있어서 무덤 주인공이 어숙(於宿)임을 알게 되었다.
[형태]
영주 순흥 어숙묘는 신라시대 벽화무덤으로 흙을 쌓아 올린 원형의 봉토무덤이다. 봉토 아래쪽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둘레돌을 돌렸으며, 봉분의 지름은 16m 정도이다. 내부는 널길이 달린 굴식돌방무덤이다. 널길은 길이 260㎝이며, 널방의 서벽이 연장되어 널길의 서벽을 형성하고 있는 좌편수[널길 입구에서 널방을 보았을 때 널길이 좌측으로 치우쳐 있음] 형태이다. 널방과 널길 사이에 돌문을 설치하였고, 널길 입구는 잡석으로 폐쇄하였다. 돌문의 크기는 높이 129㎝, 상부 너비 81㎝, 하부 너비 94㎝, 두께 10㎝이다. 돌문 중앙에 손잡이를 달았던 구멍이 있고, 바깥 면에서 녹이 확인되어 청동제 고리가 바깥 면에 붙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돌문 바깥 면에는 채색화가 그려져 있고, 안쪽 면에는 ‘을묘년어숙지술간(乙卯年於宿知述干)’이라는 8자의 묘지명이 새겨져 있다. 글자에는 주칠이 남아 있다.
널방의 평면 형태는 방형에 가까우며, 규모는 동서 길이 310~314㎝, 남북 길이 245~250㎝, 높이 260~270㎝이다. 네 벽은 장대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위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기울여 쌓았다. 천장은 2매의 판석으로 덮었다. 널방 안에는 2매의 판석으로 관대를 설치하였다. 관대는 벽에서 약간의 간격을 두고 북벽과 남벽에 붙였으며, 바닥에서 높이가 82~90㎝로서 판석 아래쪽에는 장대석을 세워 받침돌로 이용하였다.
영주 순흥 어숙묘 내부 모든 벽면과 관대에는 채색화가 그려져 있었으나 인위적·자연적 손상으로 대부분 떨어져 나가고 널길 천장과 돌문에만 남아 있다. 널길 천장에 그려진 연화도의 꽃잎은 7판이며, 겹으로 표현하였다. 꽃잎의 가장자리는 붉은색으로 그렸고, 끝부분은 검은 선으로 덧칠하였다. 돌문의 인물도는 홍색·암청색·황색·백색 등 여러 색의 안료를 사용하여 돌문의 전체 면에 걸쳐 그렸는데, 하반신만이 남아 있다. 푸른색과 흰색의 치마를 입은 2인은 비교적 형체를 알아볼 수 있지만, 그 주변의 인물은 뚜렷하지 않다.
[출토 유물]
영주 순흥 어숙묘는 도굴 등으로 유물이 남아 있지 않고, 널방과 널길 바닥에서 토기와 철기의 잔편 수 점이 수습되었다.
[현황]
영주 순흥 어숙묘는 발굴조사가 완료된 이후에는 벽화의 보존을 위하여 완전히 밀폐된 상태로 봉토를 복원하였다. 영주 순흥 어숙묘는 1974년 12월 6일 사적 제238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주 순흥 어숙묘는 신라 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벽화고분이라는 점과 신라 고분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묘지명은 무덤의 편년과 신라 관직, 회화사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을묘년어숙지술간’라는 묘지는 무덤의 주인공이 신라에서 ‘술간’이라는 외위(外位)의 관등을 가진 ‘어숙’이라는 인물임을 적시하고 있다. 또 영주 순흥 어숙묘의 조성 시기인 ‘을묘년’은 6세기 이후 신라에서 본격적으로 돌방무덤이 나타난다는 점, 불교적 내세관이 적극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신라의 불교 공인이 6세기 전반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을묘년을 595년(진평왕 17)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영주 순흥 어숙묘의 벽화와 묘지명은 당시 순흥 지역의 시대상과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