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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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權氏 |
영어공식명칭 | Andong Gwo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기원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379년 - 안동권씨 입향조 권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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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460년 - 안동권씨 입향조 권요 사망 |
본관 | 안동권씨 - 경상북도 안동시 |
입향지 | 안동권씨 입향지 - 경상북도 영주시 |
세거|집성지 | 안동권씨 세거지 -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 |
세거|집성지 | 안동권씨 세거지 - 경상북도 영주시 하망동 |
세거|집성지 | 안동권씨 세거지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
세거|집성지 | 안동권씨 세거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지동리 |
세거|집성지 | 안동권씨 세거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원리 |
성씨 시조 | 권행 |
입향 시조 | 권요 |
[정의]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요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주시의 세거 성씨.
[개설]
안동권씨(安東權氏)는 경상북도 안동시를 관향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이자 삼태사(三太師)의 한 명인 권행(權幸)이다. 영주 지역의 안동권씨는 문과급제자 6명, 무과급제자 4명, 생원, 진사 29명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연원]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은 안동의 호족으로 본래 김행(金幸)이였다. 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과 함께 왕건(王建)[877~943]을 도와 후백제군을 격퇴한 공로로 권씨(權氏) 성을 하사받고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보(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에 봉해졌다. 후삼국 통일 후에는 태사(太師)의 작위를 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권행을 시조로 하고 안동을 본관으로 삼았다. 영주 지역의 안동권씨는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을 지낸 권척(權倜)[1589~1615]을 파조로 하며, 권척의 현손인 사복재(思復齋) 권정(權定)[1353~1411]의 둘째 아들 권요(權曜)[1379~1460]를 입향조로 한다.
[입향 경위]
권요는 600여 년 전에 안동 기사리에서 처가인 영주 지역의 화천(禾川)으로 이주한 것을 계기로 영주 지역에 입향하였다. 처가는 여흥민씨(餘興閔氏)로 당시 영주 지역의 유력한 토족이었다. 입향조 권요는 아들이 6명 있었는데, 그중 셋째아들 권경석(權景石)의 후손들은 봉화 선돌, 평은면 미림(美林), 영주의 성밑[城底] 등에 세거하게 되고, 다섯째아들 권경행(權景行)의 후손들은 영주 뒤새[杜西]와 사례[砂禮]에 세거하게 되고, 여섯째아들 권경주(權景柱)[1414~?]의 후손들은 영주 밤실[栗谷]에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안동권씨는 현 영주 지역 시내의 성밑을 중심으로 뒤새와 사례, 영주시 평은면 미림, 영주시 이산면 지동(池洞)과 밤실 등지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중 성밑 뒤편의 구산 일대에는 입향조의 고향인 안동 예안면 기사리로부터 옮겨온 입향조의 아버지 권정의 여러 유적을 비롯하여 춘수당(春睡堂), 대은정 등과 같은 문중의 중요한 유적들이 있다.
[관련 유적]
안동권씨 문중 관계 유적으로는 영주 영주동 반구정, 봉송대, 영강정(暎江亭), 춘수당, 대은정, 모운정(慕雲亭), 화수재(花樹齋), 선암재(仙巖齋), 율오정(律吾亭), 단운재사(丹雲齋舍), 사복재권선생신도비(思復齋權先生神道碑), 성곡사당(星谷祠堂)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