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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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榮州洞伴鷗亭 |
영어공식명칭 | Bangujeong Pavilion in Yeongju-dong |
이칭/별칭 | 반구정(返舊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중앙로45번길 56-8[영주동 438]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태환 |
건립 시기/일시 | 1392년 - 영주동반구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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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780년 - 영주동반구정 이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9월 29일 - 영주동반구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4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주동반구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영주동반구정 - 경상북도 영주시 중앙로45번길 56-8[영주동 438] |
원소재지 | 영주동반구정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기사리 |
성격 | 정자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안동권씨 사복재공파 문중 |
관리자 | 안동권씨 사복재공파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개설]
영주동반구정(伴鷗亭)은 고려 말에 김해부사를 지낸 사복재(思復齋) 권정(權定)[1353~1411]이 고려가 멸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1392년(태조 1) 고향인 안동 임하 도목촌의 북쪽 기사리(棄仕里)[현 안동군 예안면 기사리]에 낙향하여 세운 정자이다. 반구정은 고려를 회복한다는 뜻으로 ‘반구정(返舊亭)’이라고도 불린다. 1780년(정조 4) 후손들이 봉송대(奉松臺)와 함께 현 위치인 영주시 영주동으로 이건하였다.
[위치]
영주시청에서 남부육거리, 꽃동산로터리를 지나 선비로를 따라 약 400m 이동한 후 철길 밑 굴다리를 지나 직진하면 좁은 주차장 뒤로 구성공원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보인다.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영주동반구정이 남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변천]
영주동반구정은 권정이 고려가 멸망하자 고향인 안동 임하에 건립하였는데, 후에 후손들이 안동에서 영주로 이주하면서 지금 자리로 이건하였다. 이때 구호서원(龜湖書院)을 함께 건립하였다. 현재 영주동반구정에는 「구호서원」 현판들이 걸려 있다.
[형태]
영주동반구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5량가 몰익공계 소로수장집이다. 장대석과 막돌을 혼합한 낮은 기단 위에 둥근기둥을 세워 4칸 대청과 2칸 온돌방을 만들었다. 기둥 위의 장식은 촛가지가 없는 몰익공이나 하부는 초새김을 하였으며 별로 치목하지 않은 자연재의 대공에 포작으로 구성한 중대공을 세우고 종량 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웠는데 중대공과 마찬가지로 첨차와 소로를 끼워 장식하였다. 또한 충량위에도 포대공으로 처리하여 격식을 갖추려고 하였다. 대청은 전면에는 사분합문을 달고 측면과 배면은 판벽에다 창을 두었다. 온돌방과 면한 부분은 중앙에 기둥 대신에 설주를 세우고 양옆에 이분합 들문을 달았으며 문짝의 크기도 달리하였다. 건물의 정면과 온돌방 쪽 측면에 쪽마루를 시설하였는데 정면 우측 부분 쪽마루를 지탱하는 동바리를 돌기둥으로 한 것이 특이하다.
[현황]
영주동반구정은 지난날 동구대(東龜臺)와 서구대(西龜臺)가 둘려있고 서천(西川)이 돌아 흐르며 넓은 들이 펼쳐져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동구대와 서구대의 사이로 철도가 놓이고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옛 정취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반구정에는 소우(小愚) 강벽원(姜璧元)이 쓴 「반구정」 현판과 작가 미상의 「반구정」 현판이 남아 있다. 주변에는 가학루·봉송대·춘수당·대은정 등 유적과 구성산성이 있다. 영주동반구정은 1997년 9월 29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주동반구정은 3칸의 소규모 정자 건물로는 가구 구성이 견실하면서도 격식을 갖추고 있으며 문틀의 형태나 기둥머리 장식 등에서 18세기의 건축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