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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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可興一洞冶城宋氏集姓村 |
영어공식명칭 | Yaseong Song Clan's Collective Village in Gaheung1-dong |
이칭/별칭 | 성지미미을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1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중휘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야성 송씨 집성촌.
[개설]
야성송씨(冶城宋氏)는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야성송씨의 시조는 송맹영(宋孟英)으로 고려 목종 때에 간의대부, 총부의랑을 지내고 야성군에 추증되었다.
[명칭 유래]
성지미라는 마을의 명칭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먼저 과거 물 건너 솟대재에 송대년(宋大年)이라는 선비가 살았다. 당시 “마을 뒷산이 작지만 성스럽다”라고 하여 성(聖) 자에 잠(岑) 자를 써서 ‘성잠(聖岑)’이라고 부른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해 ‘성지미’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로는 풍수지리에 밝은 성지도사가 마을 뒷산에 서기(瑞氣)가 서려 있는 것을 보고 이곳을 찾았더니 야성송씨 심원당 정자가 있는 것을 보고는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성지도사가 다녀간 곳이라 하여 ‘성지미’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형성 및 변천]
야성송씨가 처음 영주에 입향한 것은 눌재(訥齋) 송석충(宋碩忠)[1454~1524]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의 기미가 보이자 비운을 면할 길이 없어 한성(漢城)의 호현방(好賢坊)으로부터 처족이 사는 강주[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봉향면 휴천리에 은거하기 시작한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이후 송석충의 아들 4형제가 영주의 4개 파로 분파되어 흩어져 살았다고 한다. 영주시 가흥1동 성지미마을의 야성송씨 성잠문중은 19세인 심원당 송대년의 후손들로 알려져 있다.
[자연환경]
영주시 가흥1동 성지미마을은 한정교 남쪽 금강물류와 노벨리스코리아 영주공장 사이에 있다. 성지미마을 앞에는 ‘심원당’의 이름을 딴 정자가 있고 주택들은 골짜기 안에 층층이 자리 잡고 있다. 뒷산을 성봉(聖峰)이라 하는데 장군봉(將軍峰)이라고도 부른다. 산줄기가 오른쪽으로 길게 뻗었는데 오른쪽 끝자락을 남경대(覽鏡臺)라고 한다.
[현황]
영주시 가흥1동 성지미마을에는 현재 6호 정도만 남아있는데, 모두 야성송씨 집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