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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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輅 |
영어공식명칭 | Kim R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위은숙 |
[정의]
고려 후기 영주 지역에 세거한 문신.
[개설]
김로(金輅)[1351~?]는 고려가 망하자 절의를 지키고자 고향에 은둔한 문신으로 예안김씨 가문의 현조이다.
[가계]
김로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이다. 아버지는 비순위정용호군(備巡衛精勇護軍)을 지낸 김방식(金方軾)이다. 부인은 지안산군사(知安山郡事)를 지낸 윤인희(尹仁禧)의 딸 덕풍윤씨(德豊尹氏)이며, 아들은 영유현령(永柔縣令)을 지낸 김소량(金小良)[1384~1449], 손자는 홍문관교리를 지낸 김증(金潧)[1413~1456]과 이조판서를 지낸 김담(金淡)[1416~1464], 통례원통찬을 지낸 김홍(金洪)이다. 김증과 김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현달하였다. 원래 예안김씨 가문은 예안 지역에 세거하고 있었는데, 김로의 아들 김소량이 영주로 이거 하게 되면서 이후 영주 지역을 대표하는 재지사족 가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활동 사항]
김로는 고려 말 좌우위보승낭장(左右衛保勝郎將)을 거쳐 밀직사(密直司)에 올랐다. 고려가 망한 후에는 절의를 지키고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 예안으로 돌아갔다. 이때 사람들이 김로의 절의를 가상히 여겨 「채미가(採薇歌)」를 부르며 전송했다고 한다. 「채미가」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절의를 지키며 부른 노래이다. 만년에 영주 황조동(黃鳥洞)[지금의 영주시 문수면 적동리]에 이거 했다는 설도 전한다.
[학문과 저술]
김로는 원천석(元天錫)[1330~?], 우현보(禹賢寶), 이색(李穡)[1328~1396], 이숭인(李崇仁)[1347~1392], 성사제(成思齊)[1330~1392], 범세동(范世東)과 함께 신현(申賢)[1298~1377]의 학문과 언행을 엮어 놓은 『화해사전(華海師全)』 증보에 참여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