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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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瓔 |
영어공식명칭 | Gwak Yeong |
이칭/별칭 | 계진(季珍),우주암(宇宙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감병훈 |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학자.
[개설]
곽영(郭瓔)[?~1618]은 경상도 풍기군[지금의 단산면 단곡] 출신의 학자로 광해군 연간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가계]
곽영의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진(季珍), 호(號)는 우주암(宇宙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판관을 지낸 곽자보(郭子保), 할아버지는 생원 곽한(郭瀚), 아버지는 진사 곽진(郭𡺽)[1568~1633], 어머니는 평해황씨(平海黃氏)로 참봉을 지낸 황언량(黃彦良)의 딸이다. 형은 곽현(郭玹)이다.
[활동 사항]
곽영은 평소에 활달한 성품을 지니면서 강직하고 굳센 지조에 문장으로 명성이 알려져 있었다. 1615년(광해군 7)에 실시된 식년시에서 진사 2등으로 입격하였다. 그런데 이때 조정에서는 인목대비 폐비가 거론되고 있었다. 이에 곽영은 1617년 12월 상소를 올려 폐비 문제에 대한 신속한 마무리를 청원하였다. 1618년 윤4월 6일에는 권신이었던 이이첨(李爾瞻)[1560~1623]과 허균(許筠)[1569~1618]을 논핵하는 상소를 올리며 조야(朝野)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상소로 인해 이이첨과 허균은 자신을 변무하는 상소를 올리는 한편, 양사(兩司)에서는 곽영을 나문(拿問)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상소를 올린 지 하루 만인 1618년 윤4월 7일에 의금부에 나수(拿囚)되고 말았다. 곽영은 옥중에 갇힌 지 7개월 만에 천연두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곽영의 문집인 『우주암집(宇宙庵集)』은 아버지 곽진의 『단곡집(丹谷集)』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시 40여 수와 소(疏) 1편, 서(書) 1편 등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