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387
한자 農村振興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문경호

[정의]

일제강점기 예산 지역에서 진행된 일제의 농촌 개편 및 농민 통제 정책.

[개설]

1930년대 일제의 식민통치와 세계대공황으로 농촌이 피폐해지자 일제는 빈궁의 원인을 농민의 무능과 게으름으로 돌리고, 이를 개선한다는 명분 아래 농촌진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예산에서도 (농촌)진흥회가 조직되어 자력갱생을 내세우며 토지개량운동, 종자개량운동, 퇴비증산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내용]

후발 제국주의 국가였던 일제는 자국 내에서의 급격한 공업화에 따른 농업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한국에서 농업 중심의 식민지 경제정책을 전개하였다. 1910년대의 토지조사사업과 1920년대의 산미증식계획을 통하여 한국의 농촌을 식민경제에 편입한 일제는 농민들을 식민체제에 편입시키고, 식민 경제체제에 따른 농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농촌진흥운동을 전개하였다. 농촌진흥운동은 춘궁 퇴치, 근검절약, 미신 타파 등을 목표로 전개된 운동이며, 전통적인 계 중심의 농촌을 면 중심의 행정적인 체제로 재편하고, 식민경제체제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농민의 개인 책임으로 전가하는 이면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정책이었다.

전통적인 농업 지역인 예산에서의 농촌진흥운동도 바로 이러한 의도 속에서 진행되었다. 1916년 처음 진흥회가 조직된 이래 1930년 5월에는 예산군 12면 175리에 189개소의 진흥회가 조직되었다. 각 진흥회는 일제의 집중적인 간섭을 받고 있었다. 군지정 진흥회와 면지정 진흥회와 같은 지정 진흥회가 각각 선정되었으며, 지정 진흥회는 국고보조금이 집행되어 경제적인 이익이 있었으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군면에서 파견된 직원들에 의해 가호 단위로 집중 지도 및 감독을 받았다. 예산의 대표적인 지정 진흥회로는 군지정 진흥회로 광시면 장전리진흥회, 면지정 진흥회로 광시면의 용두리진흥회, 예산면의 관작리진흥회와 수교리진흥회, 삽교면의 역리진흥회와 두리진흥회 등이 있었다.

예산 농촌진흥운동은 예산군 유림좌담회를 통해 강제되었다. 유림좌담회에서는 가사를 전담하던 부녀자까지 일선의 농업 노동력으로 확보하기 위해 부녀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정책을 전개하였다. 부녀자가 담당해야 할 농업 노동의 세목을 제시하였으며, 부녀자들이 짚신 삼기 등의 부업을 통해 발생하는 소득의 저축 액수까지 세세하게 지정하였다. 또, 유림좌담회에서는 진흥회를 통한 농촌진흥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러한 유림회의의 횟수와 장소까지 일제를 통해 지시 및 강제되었다.

[역사적 의의]

예산의 농촌진흥운동은 여타 농촌진흥운동과 같이 식민지체제 아래 농촌에서 발생하는 모순의 책임을 농민에게 전가하고, 농촌의 구석까지 침투한 일제의 식민정책을 희석하는 데 그 의도가 있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