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생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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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지역과 서판교 등 낙생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정리한 마을지. 낙생은 복지 사회를 의미하는 영락장생(榮樂長生)을 의미하는 옛 광주군 낙생면 지역으로 최근 판교 택지 개발 사업을 하면서 고구려와 백제시대의 무덤과 구석기 문화유적이 발굴되어 오래 전부터 인류가 거주한 역사가 확인되는 지역이다. 도시의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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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광주부(군) 낙생면의 경작 상태와 전세(田稅)를 기록한 장부. 현존하는 『낙생면전부』가 없어 『여지도서』나 『호구총수』 등 당시의 다른 자료를 통해 유추 해설이 가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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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지역 개발을 위해 신도시 개발 정책에 필요한 업무를 맡았던 행정기관. 서울시는 1968년 5월 7일 건설부로부터 광주군 중부면 일대[지금의 성남시]에 광주대단지 조성사업 개발 인가를 받았다. 광주대단지는 서울시의 무허가건물 철거민을 정착시키기 위한 이주단지로, 다음 해 4월 공사에 착수하였고, 5월부터 서울시 철거민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당시 광주군은 ‘광주군 성남지구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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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전의 광주군 대왕면 고등동]에서 매월 2, 7일에 개설되었던 정기시장. 조선시대의 상업은 이른바 5일장이라고 하는 장시(場市) 체계를 매개로 발달하였고, 18세기 후반에 오면 장시망이 포화상태에 이른다. 성남지역의 장시 개설상황을 시기별로 보면, 조선 후기에는 판교장과 낙생장이 있었는데, 19세기 후반경 일시 소멸하였다가 1938년~1955년에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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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에 있었던 행정지명. 갑오경장 이후 새로운 행정제도 개편에 따라 이전의 전국 행정구역체제였던 팔도 및 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의 편제는 1895년(고종 32) 5월 26에 23부와 군, 즉 이원적으로 구성되게 되었다. 광주 역시 군으로 개칭되면서 한성부의 관할이 되었으며, 개편 다음해인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발표된 「지방제도관제봉급경비개정의 건」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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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광주군 중부면 내 6개 리를 관할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출장소의 명칭. 오늘날의 성남시의 모태가 된 성남시 지방행정사의 기원은 광주군 중부면 성남출장소이다. 본래 1906년 일제 통감부 체제하에서의 칙령 제 49호 ‘지방구역정리’ 때만 해도 광주군에는 중부면이 없었으나, 1910년 11월 10일에 총독부령 제8호로 공포된 ‘면에 관한 규정’에 의하여 중부면이 산성리 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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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에 조성된 일단의 주택단지. 서울시의 빈민가 정비 및 철거민 이주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된 위성도시로 현 성남시의 모체가 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곳곳의 무허가 건물에 대한 억제책을 수립하면서 서울로 집중되는 인구와 도시빈민들에 대한 분산책으로 1968년 5월 7일 건설부로부터 개발인가를 받아 1969년 4월 1일 광주군 중부면 성남출장소 관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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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인 1864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경기도 성남의 역사. 19세기 중엽 조선의 전통 사회는 안으로는 부패하고 무능한 양반 지배 체제에 반대하는 민중 세력의 힘이 성숙되고, 밖으로는 일본과 서구 열강 침략 세력의 침투, 그리고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 강점기를 맞게 된다. 성남 지역은 이 시기에 근대식 학교가 설립되고, 교통의 발전과 이에 따른 시장이 활성화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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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경기도 성남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명칭. 조선시대 광주군 낙생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근대적인 행정 단위로서는 1907년 설치되어 돌마면, 대왕면, 중부면 일부의 6개리와 함께 성남 지역의 근간을 이루었다. 현재의 판교 신도시와 분당구 금곡동, 구미동 등 11개 법정동이 낙생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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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면단위의 행정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설치된 낙생 지역의 면사무소.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일원적 지배 구조를 위해 1911년 면 단위 행정 체계를 수립하면서 만들어진 낙생 지역의 행정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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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7일 낙생면 판교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낙생면의 만세시위운동은 초대면장 남태희 등의 주도하에 돌마면과 연합하여 전개되었다. 남태희는 3월 27일 돌마면에서 시위를 주도한 한백봉, 한순회 등의 권유를 받고 면민들에게 시위를 권고하고 참가를 유도하였다. 율리에서 시작한 만세시위가 분당리 장날에 군중이 가담하면서 규모가 증대되었다. 시위대는 행진을 계속하여 낙생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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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지역의 우편 업무를 최초로 관장하였던 우체국. 낙생우체국은 1970년대 이전까지 성남 지역 내의 유일한 우체국으로 낙생면 뿐만 아니라 돌마면 일원, 대왕면의 고등·상적·둔전·시흥·사송 등 6개리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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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군 낙생면에 있었던 우편소. 1911년 3월에 개국한 광주우편소는 낙생지역의 우편 업무를 관장하여 전신과 전화 업무를 취급하였다. 낙생지역에서 본격적인 우편 업무가 실시된 것은 1940년 3월 28일에 낙생우편소가 개소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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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광주부(군)에 개설되었던 향시(鄕市)의 하나. 지방에서 개시되는 시장을 장문(場門) 또는 상시(上市)라고도 하였다. 그러므로 분당장문 또는 분당상시라고 불려졌을 것으로 생각되나 분당장의 현재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 15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지방의 향시는 16세기에 보편화되어 전국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조선 중기부터 정비된 면리제로 인해 낙생면도 16세기말의 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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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성남시 낙생 지역에 설치되었던 출장소. 1975년 3월 17일 성남출장소에 기획실, 총무국, 산업개발국이 신설되고, 건설담당 관제가 폐지되는 등 기구가 크게 개편됨과 동시에 성남시 판교동에 낙생출장소, 고등동에 대왕출장소, 이매동에 돌마출장소 등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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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를 지원하고 보조하는 기구, 장비 및 다양한 여건. (1) 놀이의 개념 및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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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사회 및 일제강점기 때 농민들이 지배세력에 대항하여 벌인 저항운동. 농민들은 총체적인 봉건사회의 억압하에 어떠한 사회적, 신분적 모순을 의식못한 채 살아왔다. 그러나 19세기 근대사회가 태동하여 봉건사회체제가 무너지면서 농민은 점차 봉건적 모순을 자각하게 되었다. 농민들이 집단을 이루어 봉건적 모순에 저항하며 개혁운동을 폄으로써 우리나라 농민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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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서 토지를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생산물을 얻어내는 경제 활동. 농업은 인류가 지구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시작한 원시산업으로 여러 산업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예로부터 인류의 발달과 직접, 간접으로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농업은 기상 조건에 크게 의존하는 바, 성남 지역의 기상 개황을 보면 연평균 기온은 섭씨 12.9℃이고,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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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의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성남출장소 관할 구역 이외의 지역인 돌마면, 낙생면, 대왕면 지역. 1975년 10월 1일 당시 내무부의 도시 동 행정 표준화 지침에 따라 성남시 동사무소의 분동이 실시되면서 명칭, 위치, 관할 구역에 변동이 발생하였다. 동시에 분동을 계기로 인구수에 따라 총무계,・시민계,・세무계를 설치하기 위하여 동의 직제가 인구수에 의해 3개 유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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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군 대왕면에 있었던 행정기관. 1911년 개소한 대왕면사무소는 일제하에서는 부역과 세금을 징수하는 기구였다. 3.1운동을 겪은 제국주의 일본은 소위 ‘문화정치’를 표방하며 한국 국민에 대해 유화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지방 행정 기구와 교육 기관을 확대하였다. 이 과정에서 1928년 4월 1일 세곡리에 대왕면사무소를 신축 이전하며 면 행정의 정식 출발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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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성남시 대왕 지역에 설치하였던 출장소. 1970년대 수도권의 인구 집중 억제와 수도권 주변의 무질서한 도시 확산 방지 및 서울 외곽 도시의 합리적인 육성을 위해 성남시가 성립되었고, 이후 인구가 급격히 늘자 1975년 대왕 지역을 관할하는 대왕출장소가 고등동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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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관할에 있는 옛 지명. 청계산 줄기가 남북으로 뻗은 산맥의 동쪽 사면에 있는 지역으로, 북쪽과 서쪽은 운중동 관할인 석운동, 운중동, 하산운동에 둘러싸여 있고 동쪽은 분당구 금곡동과 남쪽은 용인시 수지와 접하고 있다. 이 지역은 태릉(본동)을 중심으로 도장골, 두무만이, 장토리 등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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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단지 건설의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돌마면, 낙생면, 대왕면 이외의 신흥동, 태평동, 성남동, 은행동, 수진동, 중동[현 중앙동], 단대동, 상대원동의 8개 법정동. 1975년 10월 1일 내무부 도시 동 행정 표준화 지침에 따라 성남시 동사무소의 분동이 실시되면서 명칭, 위치, 관할 구역에 변동이 발생하였다. 동시에 분동을 계기로 인구수에 따라 총무계,・시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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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외세의 침투에 대항하여 국권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으로부터 일제강점 후 주권을 되찾고자 벌였던 일련의 반외세, 반봉건을 지향한 운동가 근대화 과정에서 민족주의운동은 대내적으로 반봉건적인 모순을 제거하는 동시에 제국주의 외압으로부터 자주 국가를 건설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근대 민족주의운동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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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7부터 3일간 한백봉, 한순회, 남태희 등이 돌마면과 낙생면의 면민을 규합하여 진행한 연합적 만세시위운동. 돌마면과 낙생면 면민의 연합시위는 규모나 영향력이 지대한 것으로 파급효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시위를 주도하기 이전에 봉화와 횃불을 통해 상호 교감을 일으켜 분위기를 조성하는 작전을 구사하였다. 시위운동의 주도자들은 3월 28일에도 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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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경기도 광주군(廣州郡)에 속했던 행정지명. 돌마면은 현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지역에 편입된 성남시의 옛 행정구역이다. 경기도 광주군에 속했던 지방행정 구역으로 『여지도서』에 의하면 조선 후기에는 2개 동리로 구성되어 있었고, 1907년에 세촌면, 낙생면과 함께 근대적 행정 단위로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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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군 돌마면에 있던 행정기관. 일제 강점기에는 군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던 지방의 행정 체계를 소규모의 면 중심으로 개편하여 면 단위까지 경찰, 행정관서 등을 설치하고 총독이 일원적으로 지배하는 식민지 탄압망을 구축하였다. 성남 지역은 1910년 11월 10일 총독부령 제8호에 공포된 면의 관한 규정에 의하여 중부면은 산성리 935~3, 5 번지의 행궁터에 처음 개소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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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7일 돌마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돌마면의 시위운동은 천도교인과 농촌의 지식인층 일단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운동을 주도하였다는 점이 특색이다. 이로써 참가자가 증폭하였고 낙생면과의 연합시위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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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우체국 개관 이전에 돌마지역에 있었던 우체국. 1971년 9월 광주군 중부면의 6개리와 돌마면, 낙생면, 대왕면을 합쳐 경기도 성남시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즉 현재의 분당은 광주군의 돌마면(분당동, 정자동, 수내동, 서현동, 이매동, 여수동, 율동, 야탑동, 도촌동), 낙생면(동원동, 금곡동, 궁내동, 삼평동, 백현동)과 용인군 수지면의 구미동이 합쳐진 것이며, 197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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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성남시 돌마 지역에 설치되었던 출장소. 1970년대 수도권의 인구 집중 억제와 수도권 주변의 무질서한 도시 확산 방지 및 서울 외곽 도시의 합리적인 육성을 위해 성남시가 성립되었고, 이후 인구가 급격히 늘자 1975년 돌마 지역을 관할하는 돌마출장소가 이매동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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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서 생활, 신앙, 풍속, 전설 등 민간에 이어져온 습속. 오늘날의 성남시는 공간적인 측면에서 자연마을과 개발도시가 혼재한다. 특히 1970년대 광주대단지 개발과 1990년대 분당신도시 개발로 그 영역이 더욱 확장되어 대부분의 주거지역이 공동주택이거나 서구식 구조를 띤다. 그로 인해 탄천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 마을 같은 형태는 극소수만이 남았다. 수정구의 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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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989. 성남초등학교 신축 교사의 부지 등을 제공한 육영사업가. 박천복은 1901년에 출생하여 정식으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면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 활동을 본격화하였다. 박천복이 성남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것은 사회적 환원을 실천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성남초등학교의 신축 교지를 기증하는 한편 사회 공적 시설인 성남출장소의 부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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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7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원말은 ‘백중날’로, 백종(百種), 중원(中元)이라고도 한다. 백중날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절에 가서 죽은 이를 위해 제사를 지내고 불공을 드린다. 그리고 칠석과 마찬가지로 밀떡과 과일로 가신(家神)에게 고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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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현종 9년(1668년) 11월 27일, 백헌 이경석(李景奭)[1595~1671]이 현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의자와 지팡이. 백헌 이경석은 인조, 효종, 현종의 3대 50년에 걸쳐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한 명상(名相)으로, 말년에 관료로서 최고의 영예인 궤장을 하사받는 영예를 누렸다. 현종이 즉위한 뒤 송시열(宋時烈) 등 집권 서인으로부터 여러 번 배척을 받았음에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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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행정구역. 분당구는 수정구, 중원구와 함께 성남시 3개 구 중 하나로, 지리적으로는 서울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25㎞, 강남에서 약 10㎞ 떨어진 곳에 있다. 분당구는 새로 계획된 도시형 정주 공간으로, 분당신도시 개발 이전까지 이곳은 구 「건축법」 제40조의 ‘건축 허가 제한’에 따라 이른바 ‘성남시 남단 녹지’로 불리던 건축행위 제한지역이었다. 정부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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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은 분당구의 북쪽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동(洞)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판교-구리간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동의 북단을 동서로 지나가고 있다. 또 동의 동쪽에는 남북을 가로질러 내곡-분당간 도시고속화도로가 지나간다. 북쪽은 수정구 신흥동, 동쪽은 매송동, 동남쪽은 서현동과 초림동, 남쪽은 정자동, 신기동과 금곡동, 서쪽은 운중동과 접하고 있다. 동의 서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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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는 분당구의 행정 및 민원을 관할하는 행정기관. 분당구청은 분당구의 18개 법정동과 20개 행정동을 관할하고 있으며, 총무과·시민과·세무1과·세무2과·주민생활지원과·경제교통과·환경위생과·건설과·도로관리과·녹지공원과·건축과·도시미관과 등 12개과 51팀으로 구성되어 분당 구민에게 행정 및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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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속하는 계획된 도시형 정주 공간으로 성남시에 조성된 1기 신도시. 서울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25㎞, 강남에서 10㎞ 떨어진 곳에 자리한 분당신도시는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과 부동산 가격 안정, 수도권의 기능 분담 등을 목적으로 1989년부터 한국토지공사에서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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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분당리에 개설되었던 향시(鄕市)의 하나. 15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지방의 향시는 16세기에 보편화되어 전국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가 강점하면서 행정구역 변경과 함께 시장의 개설과 역할도 달라지게 되었다. 조선시대는 대부분 면 단위로 시장이 개설되었으나 이때에 이르면 이(里) 단위로도 시장이 개설되게 된다. 1917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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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성남시 분당지구에 설치되었던 출장소. 현재의 분당구은 성남시 중원구 관할이었으나 분당신도시 개발계획에 의해 분당지구 개발 사업이 실시되자 분당출장소를 설치하고, 1991년 9월 17일 분당구가 독립하여 분당구청이 세워지기 전까지 분당 지역의 행정업무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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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와 중원구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지명. 조선시대에 오늘날 성남시의 근간을 이루는 광주군 세촌면·낙생면·대왕면과 함께 광주군 돌마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현재 상동리는 성남시 분당구 북동부 및 중원구 남부에 해당하며, 하동리는 분당구 남동부 일대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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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중앙에 위치한 도시. 성남시는 경위도 상 북위 37°19´~37°28´, 동경 127°01´~127°11´의 위치에 있다. 동쪽 끝은 중원구 상대원동, 서쪽 끝은 분당구 석운동, 남쪽 끝은 분당구 구미동, 북쪽 끝은 수정구 창곡동이다. 서울의 위성도시로서 서울의 중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20㎞ 거리에 있으며 동쪽은 광주시, 서쪽은 과천시와 의왕시, 남쪽은 용인시, 그리고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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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 있는 성남시 관할 행정기관. 성남시청은 지방자치단체인 성남시와 성남시의회에서 결정된 정책을 집행·관리하는 행정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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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진1동에 있는 수원교구 소속의 천주교회. 수진동성당은 과거의 경기도 광주군 일대, 현재의 성남시 최초의 성당이다. 초기에 위치하던 대왕면 둔전리에 공군성남기지가 들어서면서 둔전리 본당은 1971년 수진1동으로 이전되었고 1976년 수진동성당으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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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의 역사. ‘성남지역’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는지,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이 지역이 한강으로 흐르는 탄천 주변의 비옥한 평야는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실제로 여주군과 화성시, 광주시 도척(都尺) 등 인근지역에서 구석기가 발견되고, 서울 암사동, 하남시 미사리 등지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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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에 있던 옛 지명. 마을 이름은 원천동(遠天洞)의 ‘원’자와 동막동(東幕東)의 ‘동’자 병합하여 동원동이 되었는데,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낙생면 동막동, 원천동과 (구)용인군 수지면 원천동의 일부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동원리가 되었지만 이 지역은 낙생면과 수지면의 경계지역이었으므로 동막동과 원천동은 나누어져 있었다. 따라서 용인동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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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이춘삼(李春三)은 성남 출신의 의병장 윤치장과 함께 의병 활동을 한 인물이다. 윤치장이 의병대장이 되고 이춘삼이 부대장이 되었다가 윤치장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지휘권을 이어받아 대장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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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거주하는 내국인·외국인의 수 또는 시민 집단의 계수. 성남시는 조선 후기 광주목[부] 세촌면, 돌마면, 낙생면, 대왕면에 해당한다. 세촌면은 1914년에 중부면으로, 대왕면의 세천리, 지곡리, 율현리, 자양리, 수동리, 수서리, 일원리 일대는 서울시로 편입되었다. 조선시대의 인구 자료는 신빙성이 많이 떨어지므로 절대 수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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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경기도 성남의 역사. 조선시대 성남 지역은 광주에 속해 있었으며, 돌마면·세촌면·대왕면·낙생면 지역이 성남 시역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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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군에 있었던 행정지명. 경기도 광주군에 속했던 지방행정 구역으로, 조선시대부터 있던 세촌면, 돌마면, 낙생면, 대왕면과는 달리 1910년 근대적인 개념의 행정 단위로 가장 나중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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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행정구역. 중원구는 수정구, 분당구와 함께 성남시 3개 구 중의 하나로 지리적으로는 서울의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25㎞, 강남에서 약 10㎞ 떨어진 곳에 자리해 있고, 북쪽으로 경기도의 하남시와 광주시, 서쪽으로 수정구, 남쪽으로 분당구, 동쪽으로는 광주시와 접한다. 수정구와 함께 발전되고 있어 향후 많은 변화가 예상된 시가지의 한 축을 이룬다. 기반 시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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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분파. 가톨릭교회는 각 지역마다 교구(敎區)라는 개별 공동체를 두고 있으며, 각 교구에는 교구장 주교를 중심으로 보좌주교, 총대리, 사무처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다. 또한 각 교구 산하에 본당(성당)들이 있으며, 각 본당에는 교구장 주교를 대리한 주임 신부를 중심으로 사목회장, 사목협의회 등의 평신도 협의체가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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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국가의 행정 작용. 치안의 개념은 구체적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전을 목적으로 범죄자를 체포, 구금하는 등 국가의 통치권에 의한 계몽, 지도, 명령, 강제하는 작용을 한다. 이러한 행정 작용은 현재 경찰 기관이 맡고 있으나 상고시대에는 경찰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치안과 국방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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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헌병경찰제하에서 낙생, 돌마, 중부출장소 관내를 관할한 판교지역 헌병분견소. 일제는 한반도에 배치한 군대를 더욱 늘리면서 전국 각처를 헌병과 경찰에 의한 계엄통치 상태에 두었다. 조선총독은 사법, 행정, 입법을 비롯하여 군대 지휘권까지 장악,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 아래에는 정무총감과 경무총감을 두었는데 경무총감은 헌병사령관이 겸임하였다. 1910년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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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 판교원(板橋院)에 딸려 있었던 토지. 원(院)이란 공적인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사신은 물론이고, 상인 등 일반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공공 여관이었다. 성남과 광주 주변 역시 원과 주점이 발달하여 행인에 대한 숙식 제공과 물자유통 및 상공업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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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경에 광주군 낙생면 판교리에 개설되었던 시장. 15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지방의 향시는 16세기에 보편화되어 전국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가 강점하면서 행정구역 변경과 함께 시장의 개설과 역할도 달라지게 되었다. 조선시대는 대부분 면(面) 단위로 시장이 개설되었으나 이 때에 이르면 이(里) 단위로도 시장이 개설되게 된다. 1917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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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18개 숙박시설의 하나. 임진왜란 이후 폐지된 원의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 생겨난 시설로서 주막(酒幕)이 생겨나게 되었다. 역로제도와 함께 공무여행자에게 교통편의를 주기 위해 설치된 숙박시설인 원이 임진왜란 이후 폐지됨에 따라 원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생겨난 시설로서 점막 또는 흔히 주막이라고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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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낙생면 소재 험천에서 벌인 전투. 험천은 현재 분당구 구미동에서 탄천에 합류한 동막천을 말하는데, 예로부터 기우단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당시 약 12만명의 청 태종의 군대가 침략하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가 임금을 구하기 위해 수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청군과 전투를 벌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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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경기도 성남 지역의 역사. 1945년 광복 이후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으로 인한 분단과 미군정, 한국전쟁, 자본주의의 발전, 민주화운동 등 급변하는 역사 속에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통일 시대를 대비하고 있고, 성남 지역은 성남출장소, 성남시 승격, 분당신도시와 판교신도시 개발 등 급격한 도시화의 진행과 함께 첨단 산업·문화 도시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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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현 시흥동) 출신이다. 자는 동로(東老). 사계(沙溪) 문인이자 김천역 찰방을 지낸 황면(黃沔)의 아들이고, 조부(祖父)는 예천군수를 역임한 황입중(黃立中)이다. 퇴계 문인으로 선조 13년 문과에 급제하여 평안병사를 지낸 황위(黃瑋)의 증손자이다. 도승지를 거쳐 좌찬성(左贊成; 종1품)에 올랐던 황일하(黃一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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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창원. 자는 여함(汝涵)이고, 예천군수 황입중(黃立中)의 장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