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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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 이원의 문집. 『용헌집』은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문신인 이원(李原)[1368~1429]이 집필한 시, 관직 생활을 할 때 쓴 장주(章奏), 전(箋), 헌의(獻議) 등의 글 등을 모아 후손인 이우기, 이정진 등이 1957년 석인본으로 간행한 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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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군인, 공무원, 사업가. 본적은 서울, 고향은 평양, 주소는 광주 중부면 탄리이다. 한국전쟁 기간 중 월남하여 군생활을 하였고, 32세 때인 1958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1961년에는 3개월간에 걸쳐 광주군수를 지냈다. 그 후 무적(無籍)으로 전전하다가 개발사업에 착수하여, 1971년 서울에서 모란개척단을 설립하고 대표이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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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에 있었던 역사지명.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대비하여 남쪽에 있는 특별한 도읍이라는 의미이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정복사업을 크게 일으키고 백제를 침공함으로써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쟁패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고구려의 남하정책이 본격화된 것은 광개토왕 다음 왕인 장수왕 때였다. 장수왕은 그 427년(장수왕 15)에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기고 남하정책을 단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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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중대의 지방통치구역 명칭. 『삼국사기 권43 』 「김유신 열전」 하에, “문무대왕이 이미 영공(英公)[당나라 이적(李勣)]과 함께 평양을 격파한 다음 남한주(南漢州)로 돌아왔다”는 기록에 그 명칭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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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의 성남대로에 있는 고가 차도. 모란고가차도는 성남대로 모란사거리 구간을 가로질러 풍생고등학교 앞에서 모란예식장 앞까지 이어져 중앙로와 탄천로를 연결하는 고가 차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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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에 있는 오일장. 모란민속5일장은 날짜 끝 숫자가 4·9일인 날에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 오일장으로, 1963년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하대원리[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주민들에 의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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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에 있는 수인분당선 전철역이자 지하철 8호선 전철역. 모란역은 코레일[한국철도공사]에서 운영하는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의 역으로 태평역과 야탑역 사이에 있다. 동시에 서울교통공사에서 운영하는 지하철 8호선의 시·종착역으로 수인분당선과 환승이 가능하다. ‘모란’이란 명칭은 북한 평양이 고향인 김창숙이 월남하여 광주군수를 지낸 후 1970년 당시의 광주군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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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단지 사건 당시 모란지역에 세워졌던 별정우체국. 모란단지 사건은 일명 ‘김창숙(金昌淑) 사건"이라고 불리는 성남 개발 초기의 부동산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모란지역을 중심으로 4,200만평의 땅을 개발하여 인구 250만명을 입주시킬 목적으로 5년간에 걸쳐 1,328억원을 투자한다는 주택지 개발계획이었다. 이러한 모란주택지 개발계획은 광주대단지 면적의 12배, 투자액의 15배나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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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 전승되어 온 노래. 농업과 어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노동을 할 때, 일정한 의식을 거행할 때, 놀이를 할 때 부르기 시작한 노래로서, 특정한 창작자가 없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져 민중의 생활 감정을 소박하게 반영하고 때로는 국민성과 민족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민요는 비전문적인 민중의 노래로서 생활상의 필요성에서 창자가 스스로 즐기는 노래이며, 창자만으로도 존재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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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작곡가. 박태현은 1907년 9월 19일 평안남도 평양 설암리에서 아버지 박일찬, 어머니 한인찬 사이에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2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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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인조 14)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청(淸)의 침입에 의한 조선과의 전쟁. 제1차 침입인 정묘호란(1627년) 이후 맺은 조약에서 ‘형제의 맹약(盟約)’을 ‘군신의 의(義)’로 바꿀 것을 요구한 것이 직접적인 동기였다. 당시 조정은 서인이 집권하면서 숭명반청(崇明反淸) 외교노선을 취하여 오랑캐인 청나라에 대해 척화(斥和)하자는 논의가 팽배해 있었다. 이때 청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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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당시 척화파로서 청의 요구에 강하게 척화소(斥和疏)를 올린 세 사람의 학사. 홍익한(洪翼漢)[1586~1637], 윤집(尹集)[1606~1637], 오달제(吳達濟)[1609~1637]를 말한다. 1671년(현종 12) 송시열이 지은 『삼학사전(三學士傳)』에서 이들을 ‘삼학사’라 불러 그 이름으로 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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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동 등자리마을에서 성장한 이찬은 현재 81세로 일제시기와 해방 후 격동기를 살아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등자리마을에서 노인회장으로 있으면서 마을 일을 비교적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 덕수이씨 가문인 이찬은 유교적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한 것으로 드러난다. 실제로 이 마을에는 이씨 문중이 설립한 강습소가 있어 근대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며 서당에서 한문교육을 받았다. 당시 일제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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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의 지식층에서 즐기던 가곡, 가사, 시조 등의 노래에 대하여 일반 대중들이 즐겨 부르던 긴 노래. 잡가는 일반적으로 광의의 잡가와 협의의 잡가로 구분한다. 광의의 잡가는 전라도의 「화초사거리」, 「보렴」, 경기 지방의 「산타령」, 「12잡가」, 「휘모리잡가」, 서도지방의 「초한가」, 「공명가」 등 긴 노래와 각 지방의 민요까지 포함된다. 협의의 잡가는 각 지방의 민요를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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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가이자 교육가. 정동성(鄭東星)[1939~1999]은 경기도의 성남시·광주군·여주군·이천군 지역에서 1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후로도 11대, 12대, 13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민주정의당 원내총무, 국회상공위원장과 체육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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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양(平壤). 초명은 조윤(趙胤), 자는 종견(從犬), 호는 송산(松山)이다.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덕유(趙德裕)이고, 어머니는 오의(吳懿)의 딸이다. 영의정부사 조준(趙浚)의 동생이다. 증조부는 문하시중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로 제 26대 충선왕(忠宣王)의 국구(國舅)[임금의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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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 있는 조견의 묘 및 신도비. 조견[1351~1425]은 고려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종견(從犬), 호는 송산(松山)이고, 초휘(初諱)는 윤(胤)이다.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1227~1308]의 증손이자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덕유(趙德裕)[1314~1352]의 아들이며, 영의정 조준(趙浚)[1346~1405]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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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양(平壤). 개국공신 조준(趙浚)의 아우 조견(趙狷)의 5대손으로, 조필(趙㻶)의 셋째 아들이다. 처는 숙인(淑人) 흥양신씨(興陽申氏)와 숙인(淑人) 인동장씨(仁同張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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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 있는 조철산의 묘. 조철산[1404~1465]은 세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양(平壤), 호는 석실(石室)이다.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1227~1308]의 현손이자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덕유(趙德裕)[1314~1352]의 손자이며 평간공(平簡公) 조견(趙狷)[1351~1425]의 아들이다. 또한 태종대에 영의정을 역임한 월정(月亭) 유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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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초명은 습. 자는 백승(伯升), 호는 화보(花浦) 또는 운옹(雲翁)이다. 찬성을 지낸 남숙(南淑)의 현손으로, 진사 남이성(南以成)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김림(金琳)의 딸이다. 교위(校尉)인 큰아버지 남대성(南大成)에게 입양되었다....